독립운동가 베델 선생 동상, 영국에 세운다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2023. 2. 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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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독립운동가 동상 첫 설치
대한매일신보 창간해 일제 비판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오른쪽)이 영국 런던에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의 후손인 토머스 오언 베델 씨를 만나 기념우표집을 전달했다. 【사진 제공=국가보훈처】

국권 피탈 시기에 대한제국의 국권 수호와 독립운동에 기여한 영국인 기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한국명 배설)의 동상이 영국에 들어선다.

6일 국가보훈처는 한영 수교 140주년과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계기로 베델 선생의 고향인 영국 브리스틀에 그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해외 독립운동가 동상을 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훈처는 최근 주영국 한국대사관과 공동 조사 활동을 진행해 브리스틀에 있는 베델 선생의 생가를 확인하고 시 당국과 함께 표지판 설치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훈처는 영국을 방문한 박민식 보훈처장이 지난 4일(현지시간) 베델 선생의 후손인 토머스 오언 베델 씨를 만나 동상 건립 의사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박 처장은 "한국과 영국은 6·25전쟁을 통한 혈맹 관계를 넘어 이미 이전의 독립운동까지 보훈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영국에 첫 해외 독립운동가 동상 건립을 추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토머스 오언 베델 씨가 박 처장에게 "대한민국은 우리가 찾지 못한 생가를 확인하고 표지판 작업에 이어 동상 건립까지 추진하는 등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며 감사를 표시했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1872년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베델 선생은 일본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는 1904년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통신원 자격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베델 선생은 제국주의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해당 매체의 논조를 따르지 않고 일제가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을 기사화했다가 해임됐다. 이어 그해 7월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해 일본의 한국 침략을 규탄하는 독립운동을 펼쳤다.

베델 선생은 신문사에 '개와 일본인은 출입을 금한다'는 간판을 달아 놓고 일본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 그는 당시 영국과 일본이 맺었던 '영일동맹'에 따른 치외법권을 최대한 활용해 일본을 비판해 한국인들에게 신망받았다.

또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을 반대하며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친서를 신문에 게재하는 등 일본의 한국 침략을 폭로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는 한국 언론 최초의 '공익 캠페인'이자 경제적 독립운동이었던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눈엣가시였던 베델 선생을 한국에서 쫓아내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집요하게 공작을 펼쳤다.

결국 그는 일본에 맞선 재판 과정에서 건강을 해쳤고, 1909년 5월 37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그는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치됐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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