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소희’에게 위안 됐으면” ‘다음 소희’ 김시은[인터뷰]

오경민 기자 2023. 2. 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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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는 전주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다 대기업 콜센터에 현장 실습을 나간 소희(김시은)의 이야기를 그렸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소희(김시은) 안에는 불꽃이 있다. 활짝 웃을 줄 알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할 말 다 하며’ 화냈다. 춤추기를 좋아했다. 같은 동작에서 자꾸 실패해도 몇 번이고 일어나서 다시 연습했다. 전주 한 특성화고 반려동물관리학과에 다니는 소희는 졸업을 앞두고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남자친구에게 “나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라고 자랑했다. 출근 첫날 팀장 앞에서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통신사 콜 대응 업무를 시작했다. 서비스를 해지하려는 고객을 설득해 해지하지 못하게 하는 ‘해지 방어’ 업무를 맡았다. 고객들은 성화였고, 야근이 잦았다. 못하면 실적 압박이 들어왔고, 잘하면 목표치가 올라가 소희를 괴롭혔다. 수습 급여를 받았고, 성과급은 제때 지급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소희에게 “어렵게 뚫은 대기업 하청업체야. 사고 안 쳤지?”라고 물었고, 엄마는 “나 회사 그만두면 안 될까”라는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어느 날 소희는 근처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8일 개봉)는 2017년 있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대기업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고등학생이 3개월 만에 목숨을 끊었다. 영화 전반부는 소희와 소희 주변 인물들을 비추며 왜 소희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후반부는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는 형사 유진(배두나)을 따라간다.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추적하며 기업, 학교, 교육청과 사회에 책임을 묻는다. 영화는 <도희야>에 이어 정 감독, 배두나의 두 번째 만남으로 제작단계부터 주목받았다. 소희 역을 맡은 배우 김시은은 이 영화로 장편 영화 데뷔를 치렀다. 누구보다 생기 있었지만 결국 죽음을 택하는 소희의 변화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힘 있게 극을 끌고가 배두나에게 넘기는 데 성공한 배우 김시은을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희(김시은·가운데 뒤)는 실적 1위를 하고도 제대로 된 급여를 지급받지 못한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소희는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어려움을 이겨내보려고, 사회에 조금이라도 적응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스스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게 체감이 되고, 그만둘 수도 없었잖아요. 친구들도 다 비슷한 상황이고 비슷한 환경의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대기업이라고 알려진 곳에 갔는데 당장 직장을 그만둔다고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막막함이 계속 들었을 것 같아요.”

김시은은 소희의 입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는 “인물에 대해 모든 걸 다 알고 연기하면 정답이 있어서 유연하게 연기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며 “관련 기사는 많이 찾아봤다. 활자만으로 연기하려고 했다. 실제 사건이지만 시나리오와 텍스트에 집중해 소희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캐스팅은 의외로 간단히 이뤄졌다. 처음 만난 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봤는지 묻자 김시은은 “이 이야기가 꼭 영화로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본인이 소희를 연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정 감독은 그게 ‘소희답다’고 느꼈다고 한다. 김시은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만 해도 실제 사건이 있었는지 몰랐다. 다른 분들도 모르지 않을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다음에 있을 ‘소희’를 걱정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의 힘이 있으니까”라며 “제가 소희가 된다면 너무 좋겠지만 감히 제가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어필’을 하지 않고 그렇게만 말했다. 대사를 말하지 않았고 춤을 추지도 않았는데 그날 만남 뒤 바로 캐스팅 소식을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영화는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촬영도 대부분 이 순서대로 진행됐다. 덕분에 변화하는 소희에게 더 잘 이입할 수 있었다고 김시은은 말했다. 소희가 고객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소희와 가장 가깝게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평소 눈물이 많지 않은 편인데, 그 장면에서 절로 눈물이 났다. 이후 사무실에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울려 퍼지는 장면에서도 실제 숨이 막히고 힘들었다. 소희에게 몰입이 많이 됐구나 느꼈다”고 했다. 정 감독은 김시은에게 “너는 현장에서만 소희면 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김시은은 “이전에는 소희의 감정선을 조금이라도 놓으면 연기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일상생활에서도 소희의 감정을 잡고 있었다”면서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그 이후 바깥에서는 그냥 나로 지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힘들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점점 소희와 분리되며 많은 어려움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 [현장] 콜센터 현장실습생 이야기에 전세계 관객 박수·눈물…영화 ‘다음 소희’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5261536001

영화는 지난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돼 처음 상영됐다. 판타지아국제영화제, 아미앵국제영화제, 도쿄필맥스영화제 등 유수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감독상,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김시은은 “영화를 처음 칸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만 해도 한국적인 요소나 정서가 많아서 해외 관객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많이 웃고 울어 주셨다. 끝나고 나서 ‘공감이 많이 됐다’는 이야기도 건네주셨다”며 “소희의 문제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해외 곳곳에 소희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피부로 와닿게 느껴졌다”고 했다.

“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김시은은 “ ‘다음 소희’는 존재할 것”이라고 답했다.

“영화 속에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제가 만약 그 사람들이라고 했을 때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질문하면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나만의 책임이 아니라며 회피할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변화해야 하는데 모두가 변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음 소희’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분명히 지금도 어딘가 소희가 존재할 거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 같아요. 묵묵히 버텨주고 있는 소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고, <다음 소희>라는 영화가 그들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김시은은 “조금씩 개선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제가 출연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영화의 메시지가 많은 이들에게 전달이 됐으면 한다”며 “영화를 보시고 콜센터에 전화할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합니다’라고 한마디를 남기는, 그런 사소한 행동이 큰 변화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김시은.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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