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동성혼 보기도 싫다” 외신 장식한 일 총리 비서관

지종익 2023. 2. 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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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일본 총리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아라이 마사요시 일본 총리 비서관을 기시다 총리가 최근 경질했습니다. 아라이 씨는 지난 3일, 동성혼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보는 것도 싫다. 옆에 사는 것도 싫다"며 "인권이나 가치관은 존중한다"면서도 "동성혼을 인정하면 국가를 버리는 사람들이 나온다"라고 차별적인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아라이 씨의 발언을 보도한 NHK


기시다 총리는 아라이의 발언이 "내각의 인식과 전혀 맞지 않는 언어도단의 발언"이라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고백에 따른 부당한 차별이나 편견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라이 씨는 기시다 내각이 출범한 2021년 10월부터 홍보나 언론 대응을 담당하며 총리의 연설문 집필 등을 맡아 온 인물입니다.

기시다 총리(맨 앞)와 아라이 씨(두번째)


문제의 발언은 정례적으로 열리는 총리비서관 기자회견에서 나왔습니다. 촬영이나 녹음을 하지 않고, 발언 내용도 실명으로 보도하지 않는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자리입니다.

오프 더 레코드를 파기한 건 마이니치신문이었습니다. 마이니치는 아라이 씨가 해임된 뒤 보도 경위에 대해서도 보도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마이니치의 정치부 기자는 해당 발언을 회사에 보고했고, 마이니치 편집부는 회의를 통해 이 발언이 '동성혼 제도의 찬반에 그치지 않고, 성적소수자를 상처 입히는 차별적 내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기시다 정권의 요직에서 정책입안에 관여하는 총리 비서관이 이 같은 인권의식을 갖고 있는 건 중대한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발언 사실이 알려지며 질타를 받은 아라이 씨는 이번엔 '온더레코드'로 사죄를 표명했습니다.

동성혼 차별 발언으로 경질된 아라이 씨


마이니치의 보도는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일본은 'G7(주요 7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단 하나의 국가'라는 수식이 이번 사건을 전하는 외신 기사들에 꼬릿말처럼 붙어다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올해 G7 의장국으로 오는 5월 히로시마에서는 G7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습니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총리가 외교전에 몰두하는 가운데,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관의 발언이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크게 망신시킨 셈입니다.

기시다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


BBC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일본인의 대다수가 동성혼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도,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이나 가족관이 뿌리 깊고, 주요 7개국에서 유일하게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도했습니다.

아라이 씨의 경질 소식을 전하는 BBC


마이니치는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고 성적소수자에 대해 탄압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에서도, 타스통신이 'G7에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단 하나의 국가. 보수적인 여당인 자민당 의원 중에는 동성혼에 반대하는 이가 많다'고 비판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 국내 언론과 외신, 야당뿐만 아니라 자민당 내에서도 일제히 비판과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라이 씨 발언의 계기가 된 기시다 총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과제'라며 '동성혼을 인정하게 될 경우, 가족관과 가치관, 사회가 변하고 마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겁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입헌민주당의 이시카와 다이가 참의원은 기시다 총리도 아라이 씨와 같은 생각에서 '사회가 변하고 만다'고 발언한 것이라며 '두 발언은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한다. 언어도단은 총리도 마찬가지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시가와 다이가 참의원 트위터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 국회대책위원장은 "인사 불상사 이상의 심각한 문제다. G7 의장국인 일본만이 동성혼의 문제로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를 하며 부끄러운 상태를 세계에 알리고 말았다. 경질까지 이른 경위를 정부는 설명해야만 한다"고 기시다 내각을 비판했습니다.

사태가 커지며 기시다 내각도 연일 진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발언의 당사자인 야라이 씨, 기시다 총리에 이어 6일 열린 예산위원회에서 마쓰노 관방장관은 다시 한번 사죄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번 발언으로 상처 받은 분이나 불쾌한 생각을 하게 된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사죄를 드리고, 내각의 방침에 오해가 생기고 만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하고, 사죄드립니다"

기시다 내각에서는 통일교 유착, 정치 자금 문제 등으로 지난 해 10월 부터 다섯 명의 인사가 사임했습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동성혼 발언'의 파장은 기시다 정권에 또 한 심각한 타격이 될 걸로 보입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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