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아파트 공화국’과 25글자 이름 / 강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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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금야금 길어지던 아파트(공동주택) 이름이 얼마 전 스물다섯 글자를 채웠다.
가장 긴 이름 전국 신기록은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2차)'가 세웠다.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는 1932년 건립된 서울 충정로 '충정아파트'(당시 이름 '도요타아파트')를 효시로 친다.
1990년대까지 아파트 작명 공식은 '압구정 현대'처럼 '동네+건설사 이름'이 대종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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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야금야금 길어지던 아파트(공동주택) 이름이 얼마 전 스물다섯 글자를 채웠다. 가장 긴 이름 전국 신기록은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2차)’가 세웠다. 흡사 고난도 암기력 시험 같은 기나긴 이름을 두고는 진작부터 ‘시어머니 방문 방지용’이라는 우스개가 있었는데, “그럼 시어머니가 시누이까지 앞세워 찾아온다”는 반론 아닌 반론도 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 현상은 세상 둘도 없는 ‘아파트 공화국’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는 1932년 건립된 서울 충정로 ‘충정아파트’(당시 이름 ‘도요타아파트’)를 효시로 친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간 아파트인 종암아파트(1958년)를 거쳐 대한주택공사가 1962년 옛 마포형무소 농장터에 지은 마포아파트(현 마포삼성아파트)는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시작을 알렸다.
공업화·도시화로 서울 인구 집중에 가속이 붙자 박정희 대통령은 ‘건설입국’ 구호 아래 ‘아파트 지구 지정’제를 도입했다.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의 ‘영동’(지금 강남)이 아파트 숲으로 변모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택지개발 촉진법’은 “대한민국을 아파트 밀림으로 만들었다.”(노주석, <서울특별시 vs 서울보통시>) 우리나라 전체 주택 중 공동주택은 78.3%, 공동주택 거주자는 일반 가구의 63.3%나 된다.(통계청,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1990년대까지 아파트 작명 공식은 ‘압구정 현대’처럼 ‘동네+건설사 이름’이 대종을 이뤘다. 1998년 분양가 자율화로 ‘브랜드 전쟁’이 시작되자 공식은 ‘동네+브랜드’ 조합으로 바뀌었다. 이어 ‘파크’, ‘팰리스’, ‘써밋’ 같은 ‘펫네임’(애칭)을 끼워넣은 ‘동네+브랜드+펫네임’ 형태가 도입되며 이름은 갈수록 길어졌다. ‘있어 보이는’ 외래어 조합이 집값에 유리하다는 비속한 발상도 한몫했다.
1990년대 전국 평균 4.2자에 불과하던 이름이 2019년 9.8자로 갑절 넘게 늘었다. 좋은 말만 골라 반죽하다 보니 ‘래미안개포루체하임’처럼 이탈리아어(루체)와 독일어(하임)가 뒤섞인 국적불명 이름도 생겨났다. 최근엔 레트로 열풍의 여파인지 자정작용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반포르엘’처럼 간결한 90년대식 이름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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