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 장사 ‘유령 운송사’ 퇴출…화물운송 산업구조 어떻게 바뀌나

윤희훈 기자 2023. 2. 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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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도입된 ‘지입제’… 각종 폐단으로 차주 옭아매
영업용 번호판 하나로 수천만원 수익…고의 부도내기도
국토부의 반성 “지입제 방치, 책임 통감”
국토부 “실제 운송않는 지입전문업체, 퇴출되도 운수업 영향 미비”
부산 남구 한 화물차 주차장에 운행을 멈춘 트레일러가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화물차 면허 총량 제한을 악용해 영업용 번호판을 제공하는 대가로 화물차주로부터 3000만원, 위·수탁료로 월 30만원가량을 받던 지입전문업체들이 화물운송업계에서 퇴출된다. 지입전문업체에 비용을 내던 화물차주들은 개인운송사업자 허가를 받아 화물운송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일감은 주지 않고 번호판을 빌려주는 대가로 알선비를 챙기던 지입전문회사들이 사라지면서 화물차주들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아울러 정상적으로 운송 업무를 해오던 운송사들은 차량과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는 직영차량에 대해 차종에 관계없이 신규 증차를 허용하기로 했다. 화물차량의 탄력적인 공급을 제한하던 수급조절제 등 공급 규제도 풀기로 했다.

◇ 번호판 장사로 차주 등에 빨대 꽂은 ‘지입전문회사’

국토교통부가 6일 발표한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에는 운송업무는 하지 않고 보유한 영업용 번호판 거래로 지입료만 떼어가는 ‘지입제’ 구조 개편안이 대대적으로 담겼다.

1997년 도입된 지입제는 개인 화물차주가 운수회사 명의로 영업용 번호판과 차량을 등록한 후, 회사에서 일감을 받아 일한 후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다. 이 과정에서 차량 실소유주가 따로 있지만, 화물차 명의는 지입회사로 귀속됐다.

과거 일감 확보가 어려운 차주들을 대리해 운송사가 일감을 받아오고, 차주는 운송을 수행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특수한 사업 행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운송사에서 일감은 주지 않고, 번호판을 빌려주는 대가로 지입료만 챙기는 폐단이 나타났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영업용 화물차를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일부 운송사들은 공급 제한을 악용해 번호판에 프리미엄을 붙여 빌려주는 ‘번호판 장사’까지 시작했다. 번호판이 없으면 운행을 못 하는 화물차주들에게 번호판을 빌려주고 수천만원에 이르는 권리금을 챙기는 식이었다.

영업용 번호판은 이권 카르텔의 매개체가 됐다. 번호판을 반납할 때, 기존에 냈던 권리금을 주지 않거나, 차주가 노후 차량을 제 돈을 들여 교체할 때도 ‘지입차량 교체비’ 등 부당비용을 청구하는 일이 허다했다. 차량의 명의가 회사 앞으로 돼 있다는 점을 악용해 차량을 담보로 고액의 대출을 받은 뒤, 고의로 부도를 내는 업체도 있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입전문회사에 대해 “불로소득의 끝판왕”이나 “중간 빨대”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 같은 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폐단이 많은 지입제를 장기간 방치해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책임을 통감한다. 반성한다”고 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여러 차례 제도 개선을 시도했지만 반발에 막혀 관철하지 못했다. 정부의 의지도 강하지 않았다”면서 “화물운송업의 근본을 건드리는 개혁 작업을 이번에 착수하게 됐다. 잘못된 제도를 꼭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경기 의왕시 의왕ICD제1터미널에서 화물차가 컨테이너를 싣고 있다. /뉴스1

◇ 국토부 “일하지 않는 ‘지입전문회사’ 퇴출해도 화물운수 지장 없어”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법인 소속으로 등록된 화물차 23만여대 중 10만대 가량이 지입전문회사 소속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지입전문회사들이 일거에 퇴출되면 화물운송업계의 구조 변화가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운송 마비와 가까운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퇴출 대상으로 삼은 지입전문회사는 실제로는 운송업을 하지 않는 업체들”이라며 “정상적으로 운송업을 하는 지입업체들은 퇴출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화물차주들은 이전처럼 동일하게 운송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면서 “중간에서 빨대만 꽂고 있는 ‘무늬만 운송사’들만 퇴출함으로써 비정상적인 구조를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판단하는 ‘정상적인 운송업’의 기준은 차주들에게 일감을 제공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일감 제공 없이 번호판 수입이 전부인 회사들은 퇴출 대상 1순위다. 정부는 운송사가 제공해야 할 일감의 최소 요건으로 ‘20%룰’을 검토하고 있다. 화물차주의 운송 일감 중 20%는 지입 운송사에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송사의 일감 제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증 절차도 마련했다. 정부는 모든 운송사에 일감 제공 및 운송 실적을 신고하도록 할 계획이다. 여기에 화물차주도 실적 신고를 하도록 해 교차검증할 방침이다.

정부의 방안대로라면 번호판 장사로만 수입을 냈던 업체들은 일감을 확보해 차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문제는 영업 업무를 전혀 하지 않았던 업체들이 짧은 시간에 일감을 수주하는 게 연간 등 장기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화물운송산업 구조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일감을 제공하던 운송사들은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게 어렵지 않겠지만, 명의로만 장사를 하던 업체들로선 일감을 확보해 차주들에게 공급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운송사들의 시장 점유율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입전문회사와의 거래를 끊은 개인 화물차주들이 안정적으로 일감을 제공할 수 있는 대기업으로 소속을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송사가 차량 및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는 직영차량에 대해서는 차종에 관계없이 신규 증차를 허용하도록 한 것도 CJ대한통운 등 대기업엔 긍정적인 요인이다. 화물차 면허 총량 제한으로 증차가 어려웠던 애로를 풀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대·폐차 시 차종·톤급별 교체범위 제한을 현행 ‘5톤 이내 상향 허용’에서 ‘10~16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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