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팔꿈치는 괜찮은 거죠?” 전설적 투수의 오해받는 스프링캠프
토마스 보스웰이라는 인물이 있다. 1947년생이니까 올해 76세다. 메사추세츠의 애머스트 컬리지(문학 전공)를 다녔다. 졸업 후 첫 직장이 워싱턴 포스트였다. 처음에는 사무 보조였다. 아마 견습기자 역할인 것 같다. 우편물이나 신문 나르고, 자료 찾아오는 일이 업무였다.
이후 기자가 됐다. 12년간 스포츠 담당으로 활동했다. 야구, 농구, 골프, 테니스 등을 취재했다. 그러다가 1984년부터 칼럼니스트가 됐다. 그리고 73세(2020년)에 퇴직했다.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건강 문제였다. 50년 넘게 워싱턴 포스트에서 일한 셈이다. 그 동안 다수의 커뮤니티에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갑작스러운 소개에는 이유가 있다. 2월 초. 야구가 겨울잠을 깨는 시기다. 기지개를 켜며 동쪽으로, 남쪽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준비로 치열하다. 구슬땀이 흐르고, 흙먼지가 자욱하다. 캠프마다 힘찬 생명력과 파릇파릇한 희망이 가득하다.
이맘 때면 오래된 글 하나가 떠오른다. 보스웰 기자의 2014년 칼럼이다. 어느 스프링캠프를 취재하고 쓴 내용이다. 재구성하면 이런 스토리다.
플로리다에서 며칠 머물렀다. 브레이브스의 전지훈련장이다. 막강한 투수들이 포진한 팀이다. 그들의 자랑거리인 불펜으로 달려갔다. 마침 3명이 세션 중이었다.
한 가운데 있는 큰 덩치가 엄청나다. 대충 던지는 것 같은데 연신 95마일(153㎞)을 찍는다. 뻥~ 뻥~. 불펜이 쩌렁쩌렁 울린다. 포수 미트는 터질 것 같다. 어디 빠른 볼 뿐이겠나. 변화구도 기가 막히다. 마치 벽에 맞고 꺾이는 것 같다. 갑자기 공이 사라진다. 스티브 에이버리의 싱싱한 20대 시절이다.
그런데 옆 투수는 이상하다. 몸집도 작고, 비리비리 하다. 공 하나 던지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뭐야, 대학 투수보다 못하잖아.’ 한번씩 포수에게 사인을 준다. 뭘 던진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 것 없어도 잡을 수 있을텐데. 아마 몇 가지 구종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저게 패스트볼인가? 아니면 슬라이더? 체인지업? 도대체 구분이 안된다. 거기서 거기다.
많이 던지지도 않는다. 세션은 일찍 끝난다. 불펜을 나오는 그에게 보스웰 기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 안 좋아요? 팔은 괜찮은 건가요?” 그러자 ‘비리비리’가 꺽꺽대며 넘어간다. 특유의 웃음소리다. “왜요. 컨디션 최상인데. 오늘 전력 투구였어요.” 해맑은 표정은 바로 전성기의 매드 독(Mad Dogㆍ그렉 매덕스)이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기자에게 강의가 시작된다. 마 교수의 유명한 물리학 ‘속도론’이다.
“멀리서 차가 한 대 지나갑니다. 다른 차는 없다고 칩시다. 그럼 그 속도를 알 수 있을까요? 55마일인지, 65마일인지. 그건 구분하기 어렵죠. 커브나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요? 실밥의 회전으로 타자들이 알아차리죠. 릴리스 포인트가 조금만 달라도 들통나기 십상이예요.”
수업은 계속된다. “최고의 기술은 말이죠, 속도에 변화를 주는 거죠. 인간의 눈으로 그걸 식별하는 건 불가능해요. 딱 한 명. 그 빌어먹을 토니 그윈을 빼고는 말이죠.” (그윈의 매덕스 상대 타율은 0.415였다. 107 타석에 삼진은 제로였다.)
바야흐로 투수의 시간이다. 지금 이 시기, 캠프 초반은 그렇다. 우리 업계 얘기다. 그리고 구단 홍보 파트도 비슷할 것이다. 야수들은 이야기 거리가 적다. 아직 숫자로 표현될 게 없는 탓이다. 대신 투수들은 다르다. 일단 명확한 팩트가 있다. 볼 스피드다. 이목을 끌 데이터들이다.
뉴스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힘이 넘칠 때다. 새 얼굴들은 적극적이다. 어필을 위한 퍼포먼스도 필요하다. 그래서 공에 불을 붙인다. 여기저기 150㎞짜리가 등장한다. 캠프마다 몇 명씩이 화제가 된다. 심지어 100마일(162㎞)에도 도전장을 낸다.
물론 반갑다. 영건들은 중요하다. 리그의 희망이고 미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파워만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 결국은 방향이고, 정확성이다. 핸들 없는 자동차가 갈 곳은 없다. 차선 엄수. 안정감을 위해서는 그게 중요하다.
느릿하지만 실속 있게. 눈에 띄지 않지만 부지런하게. 반짝이지 않지만 은은하게. 그게 절정 고수가 택하는 2월의 방식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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