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버텼어, 덕분에 무사했어

한겨레21 2023. 2. 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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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와 십자가]깨끗한 화장실이 시급했으나, 농성천막을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행복했던 그 여름
2021년 6월28일 간식을 사들고 방문한 연대자와 함께 웃고 있는 노랑조아(오른쪽).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제공

한여름의 농성천막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무엇보다 화장실이었다. 감리회관(서울 광화문 동 화면세점 빌딩) 1층 화장실이 개방돼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지만, 희한하게도 자주 입구를 막아두고 공사했다. 그럴 때는 교보문고 광화문점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밤에는 세종로 파 출소의 문을 두드려 휴대전화 인증을 한 뒤 화장실을 썼다. 평소 책을 사고 문구를 구경하며 교보문고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지만, 비슷한 차림으로 여러 번 화장실에 드나들자 위생관리자가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책이나 충전 케이블 등 농성장에 필요한 물품을 사며 익명의 소비자인 양했지만 종종 눈에 띄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 묘하게 불편하고 불쾌했다.

소비자가 눈에 띄게 됐을 때

더불어, 나는 아직도 수많은 투쟁 사업장과 농성장 그리고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달마다 돌아오는 월경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궁금하다. ‘화장실’은 농성하는 모두가 함께 대안을 마련할 공공의 문제지만, 어쩐지 월경은 혼자서 잘 대처해야 하는 매우 개인적인 과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로 면생리대와 일회용 패드를 쓰는데, 농성장에서는 피냄새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화장실 이용이 쉽지 않은 조건에서 생리컵 사용은 언감생심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삽입형 일회용품(탐폰)을 썼다. 내 몸에 맞는 제품을 찾지 못한 건지 정서적 거부감인지 탐폰을 쓸 때마다 이물감을 느끼며 영 편안하지 않았는데, 더운 여름 야외에 머물면서 사용하려니 자꾸만 신경이 곤두섰다.

한번은 감리회관 13층 화장실로 올라갔다. 13층에는 감리교 청년회 사무실이 있어, 평소에도 연대 회의 등으로 친숙하게 드나들던 곳이다. 그런데 화장실 옆 공간에서 휴식하던 위생관리자가, 내가 이 빌딩 13층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자 별안간 호통치며 나를 내쫓았다. 내가 배짱이 좀 있었다면 유연하게 대처했을 텐데, 마치 거머리를 대하듯 하대와 멸시가 뿜어져 나오자 순간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기왕 왔으니 쓰고 가겠다고 말한 뒤 화장실을 사용했으나, 나중에 보니 그때 잔뜩 놀라고 긴장한 나머지 몸에 있던 탐폰을 제거 하지 않고 새 제품을 추가로 착용했다. 너무 늦게 발견했다면 쇼크가 올 수도, 병원에 가서 몸속 깊이 들어간 탐폰을 제거해야 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깨끗한 화장실이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데 얼마나 필수적 요소인지 깨달았다.

불편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날엔 처음 보는 연대자가 기도구슬을 한가득 안고 천막을 찾아왔다. 그는 매듭을 만들어 구슬을 하나씩 엮으면서 기도묵주를 만들었다. 신기한 듯 구경하는 내게, 농성장에서는 책도 안 읽히지 않느냐며 한번 해 보라고 실과 구슬을 내밀었다. 기도묵주라면 대한성공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들 덕에 익숙했다. 더욱이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무지개예수 부스에서 민김종훈 자캐오 사제(길찾는교회)가 만든 무지개 묵주를 후원 물품으로 활용한 적이 있어 친숙했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양이 되는 합장매듭을 만들어 기도구슬을 끼우고, 또 매듭을 묶고 구슬을 끼우며 묵주를 엮었다. 어떤 생산적인 대화나 활동이 불가능하고 오직 버티는 것이 중요한 농성장의 일상에서, 묵주 만들기는 깊은 명상과도 같은 경험을 가져다줬다. 왜 투쟁하는 사람들이 공예와 가까워지는 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손을 움직여 반복적인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괴롭힘에 지친 마음을 잊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며 희망을 품을 수도 있었다. 나는 묵주에 십자가와 물고기 모양의 펜던트를 달면서, 성소수자를 몰이해의 어둠으로 내모는 교단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편드시기를 기도했다.

익명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날들

2021년 6월30일 감리회관 앞마당으로 옮긴 농성천막.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제공

반은기 선생(평화교육연구소)과 함께 평화의 춤을 추는 춤테라피를 진행한 적도 있다. 몸을 박자에 맞추는 일이라곤 교회학교에서 배운 찬양과 율동뿐이어서,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이는 일이 영 어색하고 우스웠다. 하지만 대도시 한복판에서 바람을 느끼며 새처럼 날아 다닐 때나 타인과의 연결감을 느끼며 교감하고 포옹할 때, 우리가 습관처럼 외치는 자유가 어떤 냄새인지, 타인이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줄 때 어떤 촉감인지 감각할 수 있었다.

퇴근길에 일부러 들러 새콤달콤한 젤리를 주고 가는 사람, 아이스박스에 시원한 음료를 양껏 담아오고는 다음날 새로 얼린 냉매를 채워놓는 사람, 기름통을 들고 주유소까지 걸어가 발전기에 넣을 기름을 사가지고 오는 사람, 집에서 쓰던 이동형 에어컨을 들고 온 사람, 할머니와 어린아이까지 온 가족이 출동해서 응원을 전해주는 사람, 처음 왔는데 갑자기 천막 재정비 작업에 투입돼 절친한 스태프처럼 손발을 착착 맞춰 일하다 간 사람, 좋아 보이던데 한번 써보라며 모기기피제를 사오는 사람 등 농성장에는 이 싸움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응원하는 마음을 들고 찾아왔다. 힘들지만 행복한 순간이 계속 만들어졌다. 그중 어떤 순간을 이렇게 시로 적었다.

그해 여름에 우리는/ 쇠막대기로 기둥을 세우고/ 비닐천을 둘러 비를 막았지/ 아무도 반기지 않는 곳에서/ 일부러 크게 소리 지르고 시끄럽게 굴었어//
여느 하루가 얼마나 시끄러웠든/ 더럽고 소란스러웠든/ 밤이면 집으로 들어가 씻고 TV나 보면서/ 북아현동 김씨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해 여름에는/ 저녁이 내려도 영 익명이 되지 못했다/ 대도시의 밤은 어찌나 밝고 바쁜지/ 식어버린 해가 계속 떠 있는 것 같더라//
일단은 눕자 일단은 눈을 감고 쉬자/ 쿵쿵거리는 공사 소리 자동차 소리/ 익숙한 매연을 실컷 들이마시고 나면/ 새 하루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너는/ 차갑게 씻은 살구랑 요거트랑/ 샌드위치를 들고/ 또는 김밥이랑 물이랑 두유를 들고/ 보기에도 시원한 미소를 하나 가득 안은 채 찾아온다//
멋모르고 사온 불오징어 김밥이 매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먹던 모습/ 자려고 누우면 자꾸 그 맛이 생각나서/ 나는 연신 불오징어 김밥을 찾았지//
얼음팩을 머리 위에 올리고 이마에 붙이고/ 뒷목에 올리고서도 참지 못했던 더위/ 근처 빌딩으로 경찰서로 화장실을 찾아갈 때마다/ 불편하고 위축되었던 날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어/ 같이 커피를 마시고 콩국수를 먹고/ 평양냉면을 먹으며 보낸 시간들 때문에//
광화문 한복판을 지나며/ 우리가 머리를 누이던 자리를 지날 때면/ 가슴 한쪽이 시큰거리는데/ 아직도 콩국수는 맛있고 평양냉면이 좋더라//
여름이 지나고/ 뭐가 남았을까 싶을 때면/ 싱그러운 너/ 불오징어 김밥/ 콩국수랑 평양냉면!
-‘2021, 여름이었다’

운동에 투신하고 싶다는 소망의 시작

2021년 7월13일 연대자가 만들어온 펼침막 앞에 선 이동환 목사.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제공

농성은 총 26일차로 마무리됐다. 2021년 7월16일, 기자 회견을 하며 농성의 마무리를 알리고 동지들과 함께 천막과 짐을 정리했다. 상황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재판위원회가 모여 항소 기탁금 납부 기한을 며칠 넘겼으므로 2심 자체를 각하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왔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전략에 놀랐다.

재판위원 모두의 친필 서명을 넣어 통지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식 통보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나는 그렇다면 재판부의 행정처리 때문에 여기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더는 교단 어르신들의 타이머에 우리 삶을 맞추지 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동환은 좀더 버텨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이 심해지고 방역수칙이 강화돼 나와 동환, Y 이렇게 세 명만이 농성장을 지키면서 체력과 정신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공대위 회의에서 농성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대학원 복학을 준비했다. 동환은 곧바로 다음 활동을 시작했다. 언젠가 기왕 이렇게 깊이 들어왔으니 본격적으로 운동해보는 게 어떤지 제안받은 적이 있다. 동환은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남은 인생을 크리스천 퀴어 앨라이 운동에 투신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재판받고 반동성애 혐오 세력의 공격을 받으며 한국교회가 성소수자에게 얼마나 악랄한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동환은 몇몇 동지와 단체를 만들고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 운동을 시작했다. 그 주축에는 농성장에서 지독하게 근면성실하던 Y가 있었다. 동환과 Y는 실무자로서 큐앤에이 운동을 일궈나갔다. 새로운 운동과 함께 새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교단 재판은 2022년 1월 각하 결정을 뒤집고 재개됐다가, 엉망진창의 시간을 거쳐 1심 판결의 정직 2년 기한을 모두 지난 10월15일 이후까지도 2심 판결이 다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보라글방(이길보라 작가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며 투쟁 이야기를 글로 쓰고 <한겨레21>에 기고까지 했지만, 재판정에서 반동성애 세력은 그렇게 공개된 내 글을 언급하고 비난하며 우리를 정죄했다. 행복한 사람 하나 없는, 모두가 상처뿐인 재판이었지만 우리는 계속 더 큰 우리가 돼가고 있었다.

노랑조아(김은선) 믿는페미 활동가

#꼭지 소개: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믿는페미’ 활동을 하는 노랑조아(김은선)가 배우자 이동환 목사와 함께 교회 내 성소수자 혐오, 가부장성에 맞선 이야기를 전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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