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한파에 회장은 취미생활?” 골드만삭스 CEO ‘디제잉’ 도마에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3. 2. 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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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솔로몬 CEO, 유명곡 리믹스에 ‘이해충돌’ 지적
“좌뇌와 우뇌 균형 맞춘다” 월가에 새바람 찬사받더니
전용기로 뮤직 페스티벌행, 직원에 스케줄관리 지시도
실적 악화에 3200명 감원, ‘거번먼트 삭스’도 옛말
“CEO 취미생활 받아줄 여유있나” 해임 요구까지
골드만삭스 데이비드 솔로몬 CEO가 사장 시절이던 2017년 뉴욕의 한 전자음악 페스티벌에서 디제잉을 하는 모습. 'D-솔'이란 예명으로 몰래 취미로 하던 디제잉을 당시 라이벌인 하비 슈워츠 공동사장 측 인사가 ‘폭로’했지만, 오히려 이런 자유로운 모습이 대중의 호감을 사면서 2018년 CEO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그의 과도한 취미생활이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EM 어워즈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경영 악화로 휘청이는 가운데, 최고경영자(CEO)의 취미생활이 도마에 올랐다. 데이비드 솔로몬(60) CEO는 전자댄스음악(EDM)을 전문으로 하는 아마추어 디스크자키(DJ)로 유명한데, 이 취미생활이 업무상 이해충돌을 일으키고 본업을 소홀케 한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솔로몬은 지난해 6월 휘트니 휴스턴의 히트곡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를 리믹스한 음원을 발표, 스트리밍앱 스포티파이에서 월 구독자가 13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곡의 저작권을 보유한 음반사이자 골드만삭스의 고객사인 프라이머리웨이브가 미 대중음악인 순위에서 3만7547위에 불과한 솔로몬에게 세계적 히트곡의 리믹스 권리를 준 것을 두고 음악계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팝의 여왕' 고 휘트니 휴스턴의 세계적 히트고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를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가 전자음악으로 리믹스 디제잉한 음원. 이 음원은 스포티파이에서 한때 130만명의 구독자를 끌어낼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러나 음악계에서 무명에 가까운 아마추어인 솔로몬이 이런 히트곡의 리믹스 권리를 따낸 것 자체가 업체의 특혜를 받은 '이해 충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이스북

또 그래미상 수상자인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라이언 테더와 함께 작업한 솔로몬의 다른 곡은 스포티파이에서만 800만회 이상 스트리밍됐다. NYT는 이 역시 솔로몬의 음악성이나 이 업계 인지도만으로 볼 땐 불가능한 일로, 음악 생태계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솔로몬은 2018년 골드만삭스 CEO에 취임하기 전까진 ‘DJ D-솔’이란 예명으로 비밀리에 활동했다. CEO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던 사내 경쟁자가 그의 취미를 폭로했지만 오히려 회사 안팎에선 “신선하다”며 환영을 받았다. 그는 지금은 본명을 쓰며 ‘낮일(CEO)’과 ‘밤일(디제이)’을 병행하고 있다. 뉴욕과 마이애미, 바하마 등의 유명 뮤직 페스티벌이나 나이트클럽, 수퍼볼 축하파티와 아마존 창립기념파티 등에서 티셔츠에 청바지, 두건 차림으로 공연했다. CEO가 된 직후엔 아예 자신만의 음반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는 “금융가인 내가 디제잉을 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골드만삭스 일과 취미 생활은 완전히 별개이며, 업무에는 철저히 집중한다”고 해왔다. 또 디제잉으로 번 수익은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

그러나 NYT와 음악 매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 솔로몬 CEO가 시카고에 출장 명목으로 회사 전용기를 타고 간 뒤 인근 뮤직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 것을 두고 사내에서 비판이 일었다고 한다. 또 공연 관련 스케줄 관리나 수익 기부 활동에 골드만삭스 직원들을 동원했다는 의혹도 있다.

지난달 골드만삭스가 4분기 실적 발표에서 11년만의 최악의 실적을 낸 날 뉴욕 월가 본사의 모습. 골드만삭스는 3200명을 감원해 금융위기 이래 최대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솔로몬 CEO의 연봉도 30%나 감액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때 ‘월가의 신선한 바람’으로 받아들여졌던 솔로몬 CEO의 ‘투잡’이 돌연 도마에 오른 건 골드만삭스의 경영난과 관련있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4분기 순익이 1년 전에 비해 66% 줄면서 11년만에 최악의 성적을 냈다. 이에 골드만삭스는 직원의 6%에 해당하는 3200명을 해고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 감원을 단행하고, 전용기 매각과 출장 자제 등 비용 절감에 나섰다. 솔로몬 CEO 자신의 연봉도 30% 깎여, ‘월가 연봉왕’의 자리를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에게 내줬다. 예일대 로스쿨의 한 교수는 NYT에 “이런 상황에서 골드만삭스가 CEO의 과도한 취미생활을 받아줄 여유가 있느냐”고 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가 지난 2022년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스에서 열린 밀켄 인스티튜트 글로벌 컨퍼런스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골드만삭스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 투자은행이었다. 특히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금융위기 이후 미 재무부와 백악관, 연방준비제도 등 경제 요직에 대거 진출하면서 ‘거번먼트삭스(Government Sachs)’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했다. 2010년 미 문화잡지 롤링스톤이 ‘돈냄새만 맡으면 귀신같이 빨아들이는, 전지전능한 흡혈 대왕 오징어’라고 비꼴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이런 대정부 영향력은 자산운용사 블랙록으로 넘어갔고, 투자은행 분야에서도 경쟁사인 모건스탠리에게 눈에 띄게 뒤처지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한다. 지난해 연준 긴축에 따른 침체 위기로 기업 인수합병이 줄어든데다, 솔로몬 CEO가 직접 지휘했던 소비자금융 부문 성적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 골드만삭스의 로고가 비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이자 막강한 대정부 정책 영향력으로 '거버먼트 삭스'로도 불렸으나, 지금은 그런 금융 정치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이 ‘디제이 CEO’가 기존의 딱딱한 정장 등 사내 드레스코드를 완화하고, 주말엔 되도록 쉬도록 하며 통상 주 100시간이 넘던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70시간으로 낮추게 하는 등 기업 문화를 ‘친절하고 부드럽게’ 바꿨으나, 결과적으로 이 구상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뒤늦게 직원 근태를 챙기고 비상 경영 체제로 들어갔으나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뉴욕포스트도 골드만삭스 임직원들은 감원 한파가 닥치자 “디제잉을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회사 경영에 집중한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 “솔로몬부터 해임해야 한다”는 불만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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