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장외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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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16 대선을 코앞에 둔 13일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다.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물 건너가면서 재야·학생 단체들이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선언, 이날 집회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보라매공원은 1987년 대선을 시작으로 이후 장외집회의 단골 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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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16 대선을 코앞에 둔 13일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다.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물 건너가면서 재야·학생 단체들이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선언, 이날 집회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언론들은 100만∼130만 명으로 추산했고, DJ 측에서는 500만 명으로 ‘뻥튀기’했다.
이날 DJ는 민주 진영의 지지를 받은 단일 후보를 선언했고, 표로 단일화를 이뤄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집회장에는 상인만 수천 명에 달할 정도였다. 오징어 장수는 “큰 오징어는 평민당 오징어, 작은 오징어는 민정당 오징어”라며 호객을 했고, “기호는 3번, 바나나는 500원”이라고 외치는 상인도 있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유세가 끝난 후 한강대교를 건너서 서울역까지 행진했는데, DJ는 이날 열기에 취해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3위였다. 이희호 여사는 훗날 자서전 ‘동행’에서 ‘엄청난 군중이 운집한 것이 독이 돼 단일화의 기회만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보라매공원은 1987년 대선을 시작으로 이후 장외집회의 단골 명소가 됐다. 공원은 원래 진해에서 이전한 공군사관학교가 세워져 있다가 1985년 청주로 이전하면서 공원이 돼 대규모 장외집회가 자주 열렸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인 ‘효순이 미선이 사건’부터 서울광장과 광화문으로 옮기면서 이후 광우병, 촛불집회 등은 모두 광화문을 중심으로 열렸다.
장외집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DJ도 정계에 복귀한 1995년 “원외투쟁은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된다. 불가피할 때에는 원내투쟁을 중심으로 보완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된 같은 해 11월 거리로 나설 만큼 장외투쟁의 유혹을 끊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6년 만에 지난 4일 숭례문 인근에서 2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장외집회를 열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자 전국 지구당에 100명씩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169명의 의원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지만, 이날 집회엔 100여 명의 의원만 참석했다. 의석수가 압도적인 정당이 국회에서 나와 핍박받는 소수당처럼 장외로 나가는 데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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