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다움’을 원하나[플랫]

플랫팀 기자 2023. 2. 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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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장연을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장연을 강자로 승격시킨 게 아니라 약자에서 탈락시킨 것이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쓰고 다니는 마스크에도 새겨놓았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넌 약자가 아니야’라고 말했다면 그건 ‘넌 동행 자격이 없어’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오 시장은 지하철을 타게 해달라고 수십 년을 외쳐온 장애인들을 탈락시키는 대신 이번 시위로 지하철 이용에 불편을 겪은 ‘시민들’을 약자로 규정했다. 그러다보니 ‘약자와의 동행’이 그다지 약해 보이지 않는 자들과의 동행, 사실상 ‘시민과의 동행’이 되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넌 약자가 아니야’도 ‘넌 시민이 아니야’에 가까워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마스크에 씌여진 ‘약자와의 동행’은 은 오 시장이 추구하는 시정철학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처음에는 정부나 서울시가 장애인 권리 예산에 대해 이토록 부정적인 것이 재정에 대한 보수적 관념 때문인가 싶었다. 작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장애인들 요구까지 다 들어주면 나라 망한다”고 했을 때 10여년 전의 오 시장이 떠올랐다. 그는 학교 무상급식을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즉 모든 학생에게 급식을 제공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외쳤던 사람이다. 이번에 기재부 장관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회가 늘려준 장애인 관련 예산을 걷어차 버린 것처럼 당시 그는 나라를 지킨다며 시장직을 내던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돈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의 애국하는 방식이 장애인들의 권리 요구와 충돌한 건가 싶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제가 더 근본적인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아니라 눈에 의심이 간다. 서울시장의 눈에 비친 장애인은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브라질의 인류학자 카스트루 방식으로 말하자면, 사람 눈에 재규어인 것이 재규어 눈에는 재규어가 아니고, 사람 눈에 사람인 것은 재규어 눈에 사람이 아니다. 과연 장애인은 재규어일까 사람일까.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의 간담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역사의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는 점을 단서로 삼아보자. 300개의 역사 중 5%라면 15개쯤 되는 셈이다. 과연 그는 비장애시민들에게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서울의 15개 역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역사들 중 5%에 불과하죠. 이 정도면 훌륭한 거 아닌가요?’ 누구나 이용하지만 내게는 허용되지 않는 역이 있다면 단 한 개여도 문제가 아닐까. 정부든 서울시든 당장 문제를 시정할 것이고,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책임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할 것이다. 그러나 장애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시민이 아니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시민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모자란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이동하고, 학교 가고, 노동하고,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게 해달라는 게 떼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권에 대한 요구가 복지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여진다. ‘피가 모자라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맥주를 마시고 싶어 죽겠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피가 아까워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장애인이 시민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약자와 동행하려는 자선가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약자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동행하는 자가 약자여야 한다. 불쌍한 사람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면 이 모델은 파탄난다. 오 시장은 ‘한 푼 줍쇼’하는 사람에게 지갑은 물론이고 겉옷까지 덮어주려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권리 달라’고, ‘내 돈 내놓으라’고 달려드니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지하철에서 쏟아지는 욕설 중 하나로 말하자면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인 것이다.

“그래도 시민들의 공감을 얻는 방식으로 시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책읽기 모임에 전장연의 박경석 대표를 초대했을 때 누군가 물었다. “그래요, 그런 식으로 하면 모두가 공감해줄 겁니다.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 누구나 고개를 끄덕여줄 겁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에요. 뭐랄까, 지나가는 바람 같아요.” 기분 좋은 그러나 스쳐갈 뿐인 바람. 그는 차라리 욕설을 먹는 게 낫다고 했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에는 기다림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귓속에 박히는 욕설은 우리가 행동했다는 뜻이라고. 외로움이나 슬픔보다 무서운 것은 무감각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욕설은 적어도 우리의 상처, 우리의 고통을 일깨워준다고.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힘이 솟는다.” 니체가 투쟁하는 자로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은 문구이다. 강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에서 생겨난 힘을 가진 사람이다. 오 시장이 약자에서 탈락시킨 전장연은 애초에 오 시장이 동행을 꿈꾸며 떠올리는 약자가 아니었다. 전장연의 힘에 리스펙!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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