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을♬” 이태원 울린 그 노래 [가봤더니]

이은호 입력 2023. 2. 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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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동 한 식당에서 공연 중인 싱어송라이터 권나무.   사진=이은호 기자

석양이 거리에 내려앉은 지난 4일 오후 6시20분 서울 이태원동의 한 식당. “너에게 가는 길은 하루종일 / 내 마음에 빛이 내리네” 싱어송라이터 권나무가 식당 한쪽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 2회 수상에 빛나는 가수의 깜짝 디너쇼였다. 권나무가 이태원 식당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이날부터 이틀간 열린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LET THERE BE LOVE, ITAEWON!) 캠페인에 동참한 음악가 중 하나다.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은 이태원 거주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팀 이태원이 10·29 참사 100일을 맞아 벌인 행사다. 이태원 일대 클럽과 라운지 13곳에서 가수 100여팀이 출연한 음악 공연과 모금 행사, 예술작품 플리마켓(벼룩시장)이 이틀 동안 펼쳐졌다. 팀 이태원 관계자는 4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이태원을 찾은 방문객이 평소보다 늘어난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자원봉사자 120여명을 투입해 현장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 이태원은 캠페인 수익금 전액을 기부단체와 유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 캠페인 매표소를 찾은 시민들. 팀 이태원 SNS

브로콜리너마저, 이날치, 오지은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음악 공연이 특히 인기였다. 모든 공연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입장권 가격은 1인 3만9000원. 온라인에선 ‘혜자로운(가성비 좋은) 록페스티벌’이란 반응이 나왔다. 매표소엔 티켓을 구매하려는 시민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클럽은 문을 열자마자 관객으로 가득 차 입장을 제한할 정도였다. 공연장 앞에서 만난 A씨(23)는 “록밴드 라이엇키즈를 응원하려고 처음 이태원에 와봤다”라며 “이태원에 다시 사랑과 희망을 나누자는 캠페인 취지에도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캠페인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태원의 특징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권나무의 공연은 소박하고 평화롭게, 유쾌하게 흘렀다. “렛 데어 비 러브”(사랑이 있기를)라고 읊조리며 노래 ‘러브 인 캠퍼스’(LOVE IN CAMPUS)를 부르던 권나무는 갑자기 미소를 터뜨렸다.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 때문이었다. “훨~ 훠얼~” “첨벙~ 첨버엉~” 기분 좋은 노랫소리가 가게를 채웠다. 권나무는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단호하게 “사랑을, 사랑을”이라고 노래했다. 사랑은 금세 전염됐다. 관객들이 합창한 두 번째 “사랑을”을 지나 마지막엔 가수와 관객, 손님 모두가 “사랑을, 사랑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태원에서 활동을 시작한 록밴드 해리빅버튼의 공연.   사진=이은호 기자

브로콜리너마저의 공연은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밴드가 첫곡으로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을 선곡하자, 두 번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편 손들이 허공을 갈랐다. 평화를 상징하는 손짓이었다.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이 공연한 지하 클럽은 용광로 같았다. 리허설부터 강렬한 기타 연주로 관객들 심장을 긁어댄 세 남자는 “앵그리 페이스”를 외치며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해리빅버튼은 이태원에서 밴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우드스톡이라는 라이브펍에서 세 곡으로 시작해 몇 달 뒤엔 열 곡 넘게 연주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밴드 멤버 이성수의 얼굴에선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안전하게 놀 권리가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외치자 객석 곳곳에서 “네!” “맞아요”라는 호응이 터져 나왔다.

이날 공연장 곳곳에서 만난 관객들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이태원에 사랑과 희망을 전하자’는 캠페인 취지에 동감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참사 이후 처음 이태원에 방문했다는 김모(31)씨는 “곳곳에 임대 표시가 붙은 공실이 많고 상권도 많이 죽어 있어 안타까웠다”면서 “10·29 참사가 쉽게 잊혀 가는 듯해 아쉽다. 희생자를 추모할 만한 공간을 마련해 비극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김씨와 함께 공연을 보던 현모(30)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연이 다양한 장소에서 열려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이태원의 여러 공간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이 캠페인이 상권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브로콜리너마저 멤버 윤덕원은 공연에서 “(캠페인을 계기로) 서로를 위로하고, 잘못을 돌아보길, 나아가 이태원에 사랑과 희망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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