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에 가려진 부승찬의 '권력과 안보'…진면목과 독해법은? [취재파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3. 2. 6. 09: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쓴 '권력과 안보'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쓴 책 '권력과 안보'가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는 무속인 천공의 국정개입 의혹을 다시 건드려 핫이슈가 됐습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합참 등이 모여 있는 서울 용산 삼각지에서 작년 봄 회자됐을 때에야 누구도 시비 걸지 못했는데 활자로 찍혀 책으로 나오자 부승찬 전 대변인은 물론 기사 작성한 기자까지 고발당하는 사태로 번졌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천공 의혹에 쏠려 있지만 이 책의 목적은 의혹 폭로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부제목 '문재인 정부 국방 비사와 천공 의혹'에서 알 수 있듯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방부, 군의 정책 결정 과정을 내부자로서 공개하는 것이 첫 번째 주제이고, 천공 의혹은 그 다음의 소주제입니다. 천공에 할애된 페이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권력과 안보'는 진보 성향 정부와 군의 드라마틱한 정책 결정의 속살을 보여주는 문헌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학술적, 그리고 정책적 측면에서 주목할 지점들이 많습니다. 부승찬 전 대변인이 문재인 정부 사람임에도 문재인 정부를 비판적으로 관찰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관여적 문민통제의 장면들


국방부 기자실에 앉아 국방부와 군의 행동을 지켜보면 안보실의 관여가 잦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군은 자기주장 강조하기보다 안보실 눈치 보기 바쁩니다. 특히 진보 성향 정부에서 그런 현상이 심한 편입니다. 부승찬 전 대변인의 책은 군에 대한 진보 정부의 관여적 통제를 실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2021년 3월 16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 연합훈련 비난 담화를 냈을 때 우리 정부의 입장이 정리되는 과정에 대해 부 전 대변인은 "국방부와 안보실이 소통해 입장을 조율했는데 수시로 단어와 문구가 변경됐다", "소통이라기보다는 안보실에서 일방적으로 문구를 조정했다", "어느 정도 국방부 의견이 반영돼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라고 적었습니다.

작년 3월 8일 NLL 월선 뒤 나포된 북한 선박을 처리할 때도 군의 생각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부승찬 전 대변인은 "위에서는 왜 나포했냐며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라고 썼습니다. 당시 군은 절차대로 합동심문조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위쪽에서 빨리 송환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국방부로 보냈다"고 덧붙였습니다. '위' 즉 청와대에서 신속한 송환을 강요했고, 군은 하릴없이 이를 따른 것입니다.

이밖에도 부승찬 전 대변인의 책에는 문재인 정부의 안보실과 군의 관계를 증명하는 일화들이 많습니다. 각 정부의 셀프 홍보형 백서, 국회 국방위 회의록의 간접적 진술, 언론 기사 중 익명 관계자의 전언에 의존해 어설프게 접근했던 정부와 군의 의사 결정 과정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민통제 발전을 위하여


부승찬 전 대변인은 김여정 담화에 대응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보수 정권이라면 답변이 쉬웠을 것이지만…"이라고 기술했습니다. 경험적, 그리고 이론적으로 보수 정부는 어느 정도 군에 자율을 허용하고, 이에 군은 제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 정부와 군의 정책 결정 과정을 기록한 실증적 문헌이 흔치 않아 보수 정부 시기 민군 상호작용의 본모습은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가 각각 군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어느 쪽 문민통제의 과정과 결과가 안보와 민주주의에 더 많이 기여하는지, 균형적 문민통제를 정립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파악하려면 '권력과 안보' 같은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 두 진영에서 고르게 출판되면 더욱 바람직합니다. 읽기에 마음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지언정 이런 기록이 쌓이면 좋은 정책적, 학술적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

부승찬 전 대변인의 책 내용 중 천공 의혹이 자극적이고 논쟁적이어서 눈길을 끌지만 냉정하게 보면 부차적입니다. 이미 김종대 전 의원이 포문을 열어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입니다. 작년 봄 여러 현역 장교들이 듣고, 했던 이야기입니다. 고위 장교가 국방부 대변인에게 알렸다면 이것은 군과 정부 간 상호작용 자체로 읽어야 맞습니다.

국방부와 군 관련 어떤 조직이 부 전 대변인의 책에서 직무상 취득 기밀의 유출 혐의를 찾고 있다는 말도 들리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보수 정부면 몰라도, 진보 정부의 국방부 대변인에게 주어지는 정보 접근 권한은 미미합니다. 많은 이들이 읽어봐서 알겠지만 기밀이랄 것도 없습니다. 기밀 유출 혐의 색출은 군이 정치권력에 줄 서는 행태로 비칠 뿐입니다.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7068674 ]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