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글로벌 에너지전환 급물살…휩쓸릴 것인가, 이끌 것인가 (하)
세계 각국은 에너지전환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패권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그 경쟁의 핵심은 자원부터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밸류체인 전반의 장악'입니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밸류체인 장악전(戰)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문명의 시대인 만큼, 이를 장악하려는 모습은 과거와 다릅니다. '국산 제품'이라고 했을 때, 이 제품이 어디서 조립되었는지를 넘어 '소재나 부품은 어디서 공급됐는지'까지 따져보고, 관세 부과나 지원금의 차등과 같은 '세련된 총과 칼'로 장악전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각국이 주목하는 곳은 바로 중국입니다. 통상 각종 통계를 살펴볼 때, 유럽-북미-동아시아 등 지역 단위로 구분하거나, 독일-프랑스-미국-캐나다-한국-일본 등 국가 단위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존재감은 스케일을 뛰어넘는 수준이 됐습니다.
국제사회가 '탈석탄'에 적극 나서는 주된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임이 분명합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가 '미래의 우려'를 넘어 '참혹한 현실'로 찾아왔으니까요. 하지만, 단지 그 이유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이 위의 그래픽에서 드러납니다. 유럽과 북미의 입장에서, 탈석탄은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사이드 이펙트'로써 '중·러 견제'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의 영향력은 비단 석탄과 같은 '과거의 에너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전기차와 관련 기술력이 해외에서 호평받는다는 반가운 소식이 자주 들려옵니다. 하지만 위의 통계를 보면, 그 호평이 '한국의 영향력'과는 별개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전 세계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와 전기차의 생산에서 한국의 몫은 불과 4%에 불과하니까요. 세계 시장에서 '양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이 호평은 그저 스쳐 가는 달콤한 속삭임에 불과할 겁니다.
우리 정부와 다수 언론이 집중하는 '친환경차 보조금'은 IRA 전체 투자규모의 2.7%에 불과하고, 기후·에너지 투자액의 3.3%에 그칩니다. 또한, 친환경차 보조금을 통해 견제하고자 하는 자동차는 중국의 자동차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배터리 생산량과 전기차 생산량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4%에 그칩니다. 대대적인 IRA의 방점이 '한국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함'이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한 숫자입니다.
많은 운전자가 관심 갖는 '전기 승용차'의 경우, 환경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제시한 주행성능은 '1회 충전시 주행가능거리 450km'입니다. 지난해 보조금 기준(400km) 대비 50km 강화된 숫자입니다. 고성능 차량에 한해 높은 보조금을 준다는 취지에 걸맞게, 보조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가중주행거리(상온 75% + 저온 25%)'가 이 기준을 넘는 차량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기준이 빡빡해졌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시뿐, 모든 차량의 보조금 지급액수가 담긴 〈2023년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을 보면 또 다시 놀라게 됩니다. 가중 주행거리가 450km 미만임에도 불구하고 국고보조금 680만원을 전액 받는 차량이 13대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450km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현대 아이오닉5 롱레인지 2WD 19인치(449km)부터, 기준치에 100km 가까이 모자라는 현대 아이오닉6 스탠다드 2WD 18인치(353.3km)와 기아 EV6 스탠다드 AWD 19인치(352.5km)까지. 분명, 성능에 따른 차등 지급을 강화한다고 밝힌 정부였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정부가 내세웠던 '주행거리 450km'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주행거리 보조금은 계산식이 다소 복잡합니다. 우선, 차량별 가중주행거리에 0.002를 곱하고, 그 값에 0.21을 더하면 '주행거리계수'가 됩니다. 연비 보조금 계산 방식과 마찬가지로, 200만원에 이 계수를 곱한 값이 해당 차량의 '주행거리 보조금'이 되고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변수'가 추가됩니다. 연비가 좋으면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는 연비계수와 달리, 주행거리계수는 1.11을 넘을 수 없다는 조건이 달리는 겁니다. 즉, 가중주행거리가 450km인 자동차든, 500km 넘는 자동차든, 주행거리 보조금은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계산된 연비 보조금과 주행거리 보조금을 합친 뒤, 그 값에 '사후관리계수'를 곱하면 계산은 끝납니다. 직영 AS센터 운영 여부나 전산시스템 구축 여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데, 1등급은 연비 보조금과 주행거리 보조금 합산액의 100%를, 2등급은 90%를, 3등급은 80%를 받게 됩니다.
또, 주행거리가 기준을 훌쩍 넘는 506km에 달하고, 연비 또한 5.4km/kWh로 EV6보다 뛰어난 테슬라 모델3 롱레인지는 성능 보조금이 250만원에 그칩니다. 모델3의 성능 보조금이 EV6의 절반에 불과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모델3의 실제 주행거리계수는 1.222에 달하지만, “주행거리계수는 1.11을 넘을 수 없다”는 단서 조항에 걸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실제 연비 보조금과 주행거리 보조금은 500만원 전액 지급 기준을 충족하지만, 이번엔 차량 가격이 문제입니다. 차량 가격이 5,700만원~8,500만원 사이일 경우, 보조금을 50%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주행거리 기준을 400km에서 450km로 상향한 것에 대해 “전기차 기술 발달로 기준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는 차들이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며 “더 멀리 갈 수 있는 전기차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주행거리계수에 1.11이라는 상한선을 걸어둠으로써 주행가능거리가 450km를 훌쩍 넘는 차들은 여전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비계수에도 비슷한 상한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직영 AS센터 이슈를 차치하더라도, 한국산 전기차의 보호를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된 셈입니다.
이번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두고 'IRA에 맞불을 놨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맞불이라고 상황을 풀이하기엔 상대방 입장에선 너무도 약소할 뿐입니다. 재생에너지와 건물 효율 개선, 그린수소 등 기후·에너지 전반의 밸류체인 전반을 재정비하려는 상황이니까요. 냉정히 표현하자면, 이는 '맞불'이 아닌 '최소한의 자구책'에 가깝습니다. 맞불이라는 표현은, 적어도 정부가 태양광과 풍력, ESS, 건물 효율 개선, 그린수소 분야에 대해서도 국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대적인 지원과 규제를 내놨을 때에 써야 남부끄럽지 않을 겁니다.
지난주 연재에서도 강조했듯, 세계 각국은 자원, 원료, 소재, 부품,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이고도 복잡한 에너지전환이라는 무대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치밀한 정치적 계산과 재정적 투자, 과학적 연구에 몰두하면서 말이죠. 참전하기 싫다고 마음대로 빠질 수 없는 전쟁입니다.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에너지전환은 화석연료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해외의 기나긴 내연기관 역사에 맞서 고군분투하던 나라에겐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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