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박물관 소장품 관리 전문가 '레지스트라' 작은 손상은 직접 보수도 해요

성선해 입력 2023. 2.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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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그 밖의 학술 자료를 수집·보존·진열하고 일반에게 전시하여 학술 연구·사회 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을 박물관, 각종 미술품을 전시하는 시설을 미술관이라 하죠. 소중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주제의 전시와 여러 유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미술관을 찾은 경험이 있을 텐데요.

나예현(왼쪽)·김윤슬 학생기자가 송파책박물관을 찾아 레지스트라에 대해 알아봤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유물 관리, 자료 전시, 홍보 활동 등을 하는 사람을 큐레이터, 우리말로는 학예사라 해요. 일반 사기업에서 조직이 잘 운영되려면 제품 개발·영업·경영지원·홍보 등 여러 부서가 협업해야 하죠. 박물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물 관리·자료 전시·홍보 활동 등을 잘 해나가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뭉쳐야 해요. 큐레이터 역시 여러 부문의 전문가들로 분류되죠.

혹시 '레지스트라'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이들 역시 박물관·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인데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시 기획자의 역할과 레지스트라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됩니다. 과연 레지스트라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김윤슬·나예현 학생기자가 레지스트라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송파책박물관을 찾았어요. 책 문화를 선도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9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 개관한 책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공립 책박물관이죠. 레지스트라로 송파책박물관에 근무 중인 주윤아 주무관이 책을 비롯한 관련 유물 약 1만6000여 점을 소장한 이곳에서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했죠.

주윤아(맨 오른쪽) 레지스트라가 송파책박물관 수장고에 소장된 유물들에 대해 설명했다.


예현 학생기자가 "학예사와 레지스트라는 무엇이 다른가요?"라며 궁금해했죠. "흔히 박물관·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을 큐레이터 혹은 학예사라고 알고 있죠. 큐레이터의 역할은 크게 3~4개로 구분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소장품 등록·관리·출납을 담당하는 소장품 관리자, 두 번째는 상태가 좋지 않은 유물을 치료·복원하는 보존과학자, 세 번째는 다양한 문화재를 하나의 주제로 엮어 전시로 만드는 전시기획자, 네 번째는 박물관·미술관에 전시된 문화재를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진행하는 교육연구사예요. 레지스트라는 이 중에서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 등록·관리를 담당하는 소장품 관리자의 영어 표현이에요."

레지스트라가 되려면 다른 분야의 학예사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박물관학·미술사학·고고학·사학 등을 전공하는 것이 좋아요. 필요에 따라 석사·박사 학위 등을 취득하고, 1·2·3급 정학예사 자격증과 준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도움되죠. 무엇보다 여러 박물관에서 다양한 유물을 접하면서 레지스트라로서 업무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파책박물관에는 약 1만6000여 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으며, 밖에서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 형태다.


수장고는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이 모여있는 창고예요.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들은 빛과 온도에 민감해 보통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송파책박물관 수장고는 밖에서도 유리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죠. 레지스트라가 주로 활약하는 공간도 바로 수장고랍니다. "레지스트라가 일하는 곳을 함께 견학해볼까요." 주 레지스트라가 윤슬·예현 학생기자를 지하에 있는 수장고로 이끌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수장고 입구에는 외부 공기 유입을 막기 위해 두꺼운 철제문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었어요. 또 외부 먼지 유입을 막기 위해 신발을 갈아 신고, 실리콘 소재 장갑을 껴야 했죠. 박물관에 들어온 책은 레지스트라의 손길을 거쳐 소장품으로 등록돼 수장고에 보관된답니다.

유물 치료 및 복원은 보존과학자의 역할이지만, 손상 정도가 크지 않은 경우는 레지스트라가 직접 보수하기도 한다.

수장고는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해요. 송파책박물관 수장고 안 조명은 유물에 손상이 가지 않는 LED등을 사용하며, 각 유물에 맞는 조도를 적용하고 있었죠. 또한 수장고 내부에 공기가 순환이 잘되도록 매일 관리 중이었어요. 중요한 행사나 일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레지스트라의 하루는 수장고 상태 점검부터 시작됩니다. 유물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적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죠. 수장고 안은 한겨울인 밖과는 달리 선선했는데요. 실내가 19.9도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장을 갖춘 소중 학생기자단이 문을 통과하자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책장 등 책과 관련된 가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그곳을 지나니 커다란 도서관처럼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이 나타났죠. "송파책박물관 수장고에는 기록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는 조선시대 고서적부터 근현대에 출간된 잡지·신문·교과서·소설책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죠. 이 책들은 일반 소장자나 경매회사를 통해 구입하거나, 기증을 받기도 해요."

유물 치료 및 복원은 보존과학자의 역할이지만, 손상 정도가 크지 않은 경우는 레지스트라가 직접 보수하기도 한다.


흔히 책박물관이라고 하면 몇백 년 전에 만들어진 고서적만 있을 것 같지만, 송파책박물관에서는 책을 주제로 여러 전시를 진행하기 때문에 조선 세종 시기 만들어진 책부터 2000년대에 나온 소설책까지 굉장히 폭넓은 범위의 책들을 소장하고 있어요. 하나하나 모두 레지스트라의 손길을 거쳤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근대에 출판된 문학 작품·교과서 보관함들이 눈에 들어왔죠. "책마다 해당 책이 송파책박물관의 몇 번째 소장품인지를 나타내는 번호표가 붙어있어요." 소장품의 보관 상태·수량 파악도 레지스트라의 중요 업무 중 하나예요.

앞서 소장품 등록·관리를 담당하는 레지스트라와 상태가 좋지 않은 유물을 치료 및 복원하는 보존과학자의 역할이 구분된다고 했죠. 그런데 책의 손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경우 레지스트라가 직접 보수하는 경우도 있어요. 주 레지스트라가 이럴 때 쓰는 간단한 도구들을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보여줬죠. 책장을 고정할 때 쓰는 문진(文鎭), 책 사이사이에 낀 먼지를 털어내는 붓, 책을 보관하는 상자를 만들 때 쓰는 본폴더, 찢어진 책장을 붙이기 위해 쓰는 종이테이프, 소장품에 다는 이름표 등이었죠. "책장 하나하나를 넘겨 붓으로 먼지를 털고, 찢어진 책을 간단히 붙일 때는 종이테이프로 복원해요. 이 테이프는 중성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책에 붙여도 티가 잘 안 나고, 책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죠." 이렇게 상태 확인과 등록을 마친 책들은 수장고 안에 들어가고,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만나게 돼요.

레지스트라가 등록·관리하는 박물관의 소장품은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전시에 필요한 소장품 출납 역시 레지스트라가 담당한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주 레지스트라와 함께 유물을 수장고에 등록하기 위한 설명문에 해당하는 소장품 설명서 작성과 보관 단계에 해당하는 책 보관상자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체험을 위해 각자 소장 중인 책을 한 권씩 가져왔죠. 윤슬 학생기자는 『스타벅스 지리여행』을, 예현 학생기자는 『푸른사자 와니니』 1권을 꺼내 들었죠.

주 레지스트라가 소장품 설명서 용지를 각각 1장씩 배부했어요. "여러분이 갖고 온 책을 여러분만의 박물관 소장품이라고 생각하고 작성해 보세요. 설명서를 쓰려면 책의 명칭·지은이·수량·시대·재질·크기·등록일자·자료입력자 등 유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해요. 그리고 해당 책을 사진으로 찍은 뒤 출력해서 설명서에 붙이면 됩니다."

명칭은 책의 제목, 수량은 책의 권 수, 시대는 책의 발행일자, 등록일자는 소장품을 등록하는 날짜, 자료입력자는 해당 책을 소장품으로 등록하는 레지스트라의 이름을 쓰면 돼요. 책의 크기는 가로·세로·두께 등을 측정하면 되죠. 윤슬·예현 학생기자가 주 레지스트라의 설명에 따라 꼼꼼히 책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은 뒤 소장품 설명서에 붙여 정보를 기재했어요. 이렇게 하면 설명서만 보고도 유물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유물을 수장고에 등록하기 위한 소장품 설명서 작성과 책을 먼지·이물질로부터 보호하는 보관상자 만들기를 체험했다. 소장품 설명서는 책의 제목·수량·발행일자·등록일자 등 유물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한다. 책 보관상자는 책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중성지 소재의 두꺼운 종이로 만든다.


"손상이 심하거나 각별히 주의해서 보관해야 하는 서적은 레지스트라가 책 보관상자를 만들기도 해요. 여러분도 직접 만들어 보세요." 주 레지스트라가 두껍고 넓은 종이를 나눠주며 말했어요. 책 보관상자는 책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중성지를 쓰는 게 좋아요. 책의 재질에 따라 한지로 만들어진 책의 경우 한지로 싸기도 하죠. 먼저 연필로 종이 위에 책의 크기를 표시하고, 본폴더로 문질러 종이에 접는 선을 만들어요. 선을 따라 상자를 접어 완성한 뒤 책 제목·소장자·보관상자 제작일 등 관련 정보를 상자에 붙일 이름표에 간략히 기재하면 됩니다. 이렇게 따로 상자를 만들어 책을 보관하면 먼지나 이물질로부터 보호할 수 있죠.

김윤슬(왼쪽)·나예현 학생기자가 자신이 아끼는 책을 보관할 책 보관상자를 만들고, 책 제목·소장자·보관상자 제작일 등 관련 정보를 기재한 이름표를 붙였다.

"여러분이 본 것처럼 레지스트라는 수장고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등록하고 관리한 유물들이 전시·교육을 통해 관람객에게 소개가 될 때 저는 보람을 느낀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유물을 잘 관리해야 하므로 불의의 사고로 중요한 유물이 파손되거나 손상을 입으면 어려움을 느끼죠." 박물관·미술관은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물·예술품을 보관하는 중요한 장소죠. 레지스트라는 그 유물·예술품을 등록·관리해 과거의 유산과 현재를 사는 우리를 잇는다는 점에서 박물관·미술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답니다.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주윤아 레지스트라와의 만남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조선시대 책들부터 근현대사 책들까지 책으로 가득한 수장고였어요. 정말 종류가 다양한 책들이 있었어요. 또 레지스트라가 책을 한 장 한 장 붓으로 쓸어내서 먼지를 제거하는 모습도 봤는데, 많은 정성이 드는 일이었죠. 저도 책 보관함을 만들면서 책의 소중함을 느꼈어요. 이번 취재를 통해 소중한 유물이 박물관에 소장될 때 활약하는 ‘레지스트라'라는 직업이 있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고, 책에 대한 저의 감상이 좀 달라졌어요. 조선시대 책들이 레지스트라의 손길을 통해 현재를 사는 제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선시대 사람들과 제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김윤슬(서울 가동초 5) 학생기자

이번 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송파책박물관에 가봤는데 규모가 매우 컸어요. 주윤아 레지스트라와 함께 지하 수장고에 가봤죠. 수장고 안은 외부와 다르게 매우 선선했는데, 레지스트라가 매일 수장고 유물에 적정한 온도로 맞추기 때문이에요. 수장고를 둘러보고 책 보관상자를 만들었는데, 책도 오래 손상되지 않을 것 같아서 좋았어요. 이번 취재를 통해 레지스트라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됐어요. 유물을 등록하고, 간단한 손상이 있으면 보수하기도 하고, 수장고도 관리하는 직업이라 멋지고 뿌듯한 일인 것 같아요. 소중 독자 여러분도 박물관 수장고에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예현(서울 행현초 5) 학생기자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윤슬(서울 가동초 5)·나예현(서울 행현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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