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또 다른 의혹, 쌍방울그룹 자금 시끌시끌한 이유

문상현 기자 2023. 2. 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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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도피 중이던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체포됐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인맥과 돈 일부의 종착지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라고 의심하고 있다.
타이에서 붙잡힌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1월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공동취재

검찰 수사망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던 한 기업가가 1월10일 현지에서 체포됐다. 배임과 횡령·전환사채(CB) 허위 공시·대북 송금·뇌물공여 의혹 등 혐의를 받는 그는 지난해 5월 말, 자신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직전 싱가포르로 출국해 은신처를 옮겨 다니며 도피 생활을 했다. 이 기업가 검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정치권과 법조계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같은 날 성남지청에서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였다. 수사가 사실상 중단돼 있던 이 대표 관련 각종 의혹들이 급부상했다.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로 한 기업가가 지목됐다. 이날 체포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었다.

개별 사건 또는 의혹을 하나씩 따로 떼어 보면 정치인과 기업가 관계에 물음표가 많다. 이재명 대표와 김성태 전 회장 사이 ‘직접적인’ 인연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당사자들도 서로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성태 전 회장이 사업을 키워온 과정과 자금 흐름, 인맥들은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각종 의혹의 줄기를 이루고 가지로 뻗어 나와 있다. 검찰은 김성태 전 회장의 인맥과 돈 일부의 종착지가 이재명 대표라고 의심한다.

2015년 3월, 김성태 전 회장의 이름이 유가증권 시장에 처음 공개적으로 등장했다. 쌍방울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공시를 통해 김 전 회장이 ‘0.85%의 지분(신주인수권 75만 주)으로 회장에 취임했다’고 밝혔다. 외부에 공개된 쌍방울 관련 공시자료에서 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이 공시자료가 전부다. 회사를 지배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지분을 가진 회장이 취임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이력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갑작스레 회사 수장에 오른 인물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당시 증권시장에서 나돌던 ‘쌍방울그룹 실소유주’ ‘불법 사채업계 큰손’ ‘전직 조폭’과 같은 풍문뿐이었다.

김성태 전 회장의 행적은 다른 곳에 담겨 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 판결문 등이다. 김 전 회장을 둘러싼 각종 풍문의 실체, 그리고 그가 기업가가 되는 과정에서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김성태 전 회장이 처음 법원 문턱을 넘은 시점은 2006년이다. 불법 도박장 개장과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최종적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바둑이’ ‘세븐포커’ 등 인터넷 도박 게임을 설치하고 게임 머니 판매 수수료를 챙겼다. 2006년 중독성과 도박성이 심해 사회적 이슈가 됐던 ‘바다 이야기’ 사태 이후 수사기관의 불법 사행성 게임 집중 단속 과정에서 덜미가 잡혔다.

도박장 적발 1년 뒤, 김성태 전 회장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 ‘도쿄에셋’이라는 업체를 운영하면서 투자 상담업을 시작했다. 실상은 고금리 불법 사채였다. 그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미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면서 50차례에 걸쳐 높은 이자를 받고 318억원을 빌려준 혐의로 벌금형(1500만원)을 선고받았다(2017년 1월 확정). 당시 그에게 돈을 빌린 채무자 중에는 재벌 일가와 코스닥 상장사 대표이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닌 불법 사채에 손을 댄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김 전 회장의 ‘고객’ 명단과 자금 동원력을 볼 때, 당시 그가 사채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월10일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한 이재명 대표. ⓒ사진공동취재단

‘경제 공동체’ 김성태-배상윤

채무자 가운데 주목해야 할 인물은 따로 있다. 김성태 전 회장과 ‘경제 공동체’로 불리는 배상윤 KH그룹 회장이다. 그는 김성태 전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는 재벌 일가도, 유망한 회사의 대표이사도 아니다. 전남 영광 지역 기반 폭력조직 출신이라는 풍문이 있다. 또한 채무자를 납치한 뒤 끌고 다니며 돈을 받아내 강도상해·협박 등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이력이 있다. 지난해 김성태 전 회장과 연계돼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자 동남아시아로 출국했던 배상윤 회장은 최근 김 전 회장 체포 직후 수사기관에 귀국 의사를 알려왔다. 배 회장은 지난해 2월 강원 알펜시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입찰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도 수사받고 있다.

배상윤 회장과 김성태 전 회장의 교류는 2007년부터 확인된다. 배 회장이 불법 대부업을 하던 김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빌려 썼다. 이후 자금 거래 규모와 횟수가 늘었다. 사석에서 ‘형님’ ‘동생’으로 부르는 관계로 가까워진 이들의 주변에선 두 사람이 ‘한몸’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김성태 전 회장이 ‘기업가’로 직함을 바꾼 데에도 배상윤 회장이 거론된다. 김 전 회장보다 먼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활동하던 배 회장은 2009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쌍방울의 1대 주주 지분과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다. 당시 배 회장의 쌍방울 인수 자금 일부가 김 전 회장에게서 나왔다. 배 회장은 운영하던 서울 강남의 고급 사우나를 담보로 김 전 회장에게 19억원을 빌렸다. 그러나 잔금은 물론 계약금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쌍방울 인수에 실패했다. 2010년 1월 ‘레드티그리스’라는 회사가 대한전선이 가지고 있던 쌍방울 1대 주주 지분 40.86%를 2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 알려지지 않았지만, 레드티그리스는 쌍방울 인수 직전 김 전 회장이 운영하던 불법 대부업체 ‘도쿄에셋’의 이름을 두 차례 바꿔 만든 회사였다. 19억원을 갚지 못한 배 회장이 쌍방울 인수권을 김 전 회장에게 통째로 넘긴 셈이다.

김성태 전 회장은 쌍방울 인수 이후 사세를 불렸다. 광림(소방차, 펌프카 등 특수차량 제조사·2013년), SBW생명과학(옛 나노스, 카메라 모듈 제조사·2016년), 비비안(속옷 기업·2019년), 아이오케이컴퍼니(연예기획사·2020년)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기업 인수를 계속해서 시도해온 배상윤 회장도 조명회사 KH필룩스(2016년), KH전자(옛 삼본전자·2018년), 장원테크(2019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2019년)과 강원 알펜시아리조트(2021년) 등을 연달아 사들이면서 KH그룹을 만들었다. 현재 쌍방울의 계열사는 51개(상장사 7개), KH그룹 계열사는 81개(상장사 5개)이다.

김성태 전 회장의 쌍방울 인수 시점을 기준으로, 두 그룹사가 10여 년 사이 수십 개 회사를 거느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환사채(CB)’가 있다. 중소기업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CB는 채권의 일종이다. 돈을 빌려주면 원금 보장에 이자도 받는다. ‘전환’ 사채라 일정 기간 뒤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채권 매입 당시 약속한 주식 전환 가격보다 주가가 떨어지면 전환 가격도 낮아진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바꾸고, 주가가 내리거나 차익이 크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로 받으면 된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전환사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CB를 발행해 투자를 받아(돈을 빌려) 다른 회사를 인수했다.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현금 한 푼 없어도 ‘남의 돈’으로 회사를 살 수 있는 이른바 ‘무자본 M&A’가 이뤄졌다. 그룹 계열사끼리도 전환사채를 사고팔았다. 이 돈으로 또 다른 회사와 부동산 등을 샀다. 신사업 발표, 정부 정책 테마주 분류, 대형 기업 인수전 참여 등으로 주가가 급등한 시점에 주식으로 바꿔 차익을 내기도 했다.

현재 쌍방울그룹과 KH그룹은 상장사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 지배구조 곳곳에 상장사 지분을 가진 투자조합이 포진해 있다. 투자조합은 일반 기업처럼 등기 의무가 없다. 조합원이 공개되지 않는 만큼 내부 관계자가 아니면 자금 흐름, 돈을 대는 ‘전주’ 등을 알기 어렵다. 주식으로 전환되면 수사기관도 자금 추적에 난항을 겪는다. 상장사들의 CB가 여러 차례 매각 과정을 거쳐 투자조합으로 흘러 들어갔다.

쌍방울그룹과 KH그룹은 지분 투자로도 연결된다. KH그룹 지주회사 건하홀딩스가 쌍방울그룹 비비안의 계열사로 분류돼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두 그룹의 계열사들이 서로 CB를 사고팔기도 했다. 공동출자해 만든 회사도 있다. 지난해 4월 쌍용차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쌍방울그룹 계열사 광림과 KH그룹 필룩스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CB 거래의 한 축은 주가다.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시기에 주가가 올라야 시세차익이 커진다. 쌍방울그룹과 KH그룹처럼 계열사들이 순환출자로 묶여 있으면, 주가 상승에 의한 CB 차익은 계열사 전체의 이익과 연결된다. 현재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지난해 쌍방울이 쌍용차, 이스타항공 인수전 참여 당시 주가가 급등하자마자 CB를 보유했던 인물들이 주식으로 바꿔 매도한 정황을 포착하고 시세 조종 의혹을 조사 중이다. 이보다 앞서 쌍방울과 KH그룹이 다른 기업 인수를 시도했을 당시 주가가 오른 상황에 대해서도 시장에서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성태 전 회장과 배상윤 회장은 이미 주가조작 혐의로 나란히 법정에 선 이력이 있다. 2013년 4월 출범한 서울중앙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쌍방울-유비컴 주가조작’ 의혹을 첫 인지 사건으로 수사한 뒤 김 전 회장과 배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판결문을 보면, 이들은 2010년 쌍방울 인수 직전부터 주가조작을 벌였다. 직원·가족 및 친인척 명의 계좌를 이용해 가장매매, 고가매수, 물량소진 매수 등으로 시세 조종을 했다. 김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배 회장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2018년 확정).

쌍방울그룹과 관련해 변호사비 대납 의혹, 대북 송금 의혹, 대장동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시사IN 이명익

사외이사를 적극 활용했던 김성태

쌍방울그룹과 KH그룹이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김성태 전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10여 년간 수십 개 회사를 인수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인수 뒤 새 대표이사 취임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속옷 회사로 친숙했던 쌍방울이 여러 업종을 넘나드는 대형 그룹사로 거듭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법적 책임이 있는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았다. 앞서의 2015년 회장 직함도 ‘비등기 임원’으로 달았다.

대신 계열사 곳곳에 측근과 가족, 친인척을 사내이사로 배치했다. 이들이 여러 계열사 사내이사를 동시에 맡기도 했다. 2006년 불법 도박장 개장 혐의로 김성태 전 회장과 함께 형사처벌을 받은 측근들도 쌍방울 계열사 곳곳에 포진됐다. 복잡하게 구성된 순환출자 구조로 인해 내부 관계자가 아닌 이상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감사 자료 등 외부에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회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는 과거 김 전 회장이 운영하던 불법 대부업체 도쿄에셋에서부터 이어져온 ‘경영 방식’으로 보인다. 당시 도쿄에셋의 대표이사는 김성태 전 회장의 운전기사였고, 주요 주주는 김성태 전 회장의 가족이었다. 도쿄에셋과 쌍방울의 실소유주가 김성태 전 회장이라는 것은 앞서의 쌍방울 주가조작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확인했다.

반면 김성태 전 회장은 사외이사를 적극 영입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010년 쌍방울 인수 이후 7개 계열사에 사외이사 총 51명을 영입했다. 법조인이 22명으로 가장 많았다. 관료와 정치권이 13명으로 뒤를 이었다. 가족, 회계사, 의사, 언론인, 금융권 출신이 각 한두 명씩 있었다. 김 전 회장의 법조계·정치권 네트워크가 ‘불법 사채업→쌍방울 인수→계열사 확대’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넓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인 사외이사 가운데 검찰 출신만 9명이다. 검찰 출신 가운데에서도 서울남부지검에서 근무했던 검사들이 눈길을 끈다. 남부지검은 금융 범죄를 주로 수사하면서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려왔다. 익명을 원한 전 쌍방울그룹 사외이사는 “김성태 전 회장이 직접 연루됐던 금융 범죄에 전문성이 있는 검사 출신들을 우선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실제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성태 전 회장을 직접 수사하고 재판에 넘긴 검사(당시 서울중앙지검), 이 사건 재판에서 김 전 회장을 변호한 변호사들도 사외이사에 포함돼 있다. 이들은 주가조작 사건 이후 사외이사에 선임됐지만, 사외이사 제도가 대주주의 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 비춰보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밖에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도피 과정에서도 전현직 사외이사들을 통해 자신을 도울 로펌을 수소문하고 변호인 선임을 시도했다고 전해진다.

김성태 전 회장과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쌍방울그룹의 CB 거래 방식, 사외이사 영입을 모두 종합해야 연결된다. 이재명 대표는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인 2018년 말 ‘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의혹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021년 9월까지 재판을 받았다. 이 대표는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당시 변호사비로 들어간 돈이 쌍방울그룹 전환사채(CB)와 관련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2018년 쌍방울그룹이 발행한 CB 200억원 중 100억원을 김성태 전 회장이 실소유한 투자조합(착한이인베스트)이 사들였고, 여러 단계 매각 과정을 거치면서 23억원이 이 대표와 그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변호를 맡았던 이태형 변호사에게 전달됐다는 의혹이다. 당시 이태형 변호사와 같은 로펌 소속이거나 로펌 지분을 가진 변호사 5명 가운데 4명이 쌍방울그룹 계열사 사외이사를 지냈다.

대북 송금 의혹은 2019년 김성태 전 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인사에게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쌍방울 계열사 임직원 수십 명을 동원해 중국을 거쳐 북한에 흘러간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북한에 거액을 보낸 배경에 당시 경기도 사업과 연관성은 없는지 따져보고 있다. 경기도가 북한에 주기로 한 ‘스마트팜 조성 사업비’ 50억원을 쌍방울이 대신 내줬다는 것이다. 북한에 흘러 들어간 돈 역시 CB(SBW생명과학, 옛 나노스 발행→제우스1호 투자조합)를 통해 세탁된 자금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북 송금이 이뤄진 시기, 나노스는 대북 테마주로 주가가 급등했다. 검찰은 이 부분도 수사 중이다. 당시 나노스는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올랐다. 나노스의 CB 200억원을 인수한 쌍방울은 약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 계열사 사외이사 가운데 관료나 정치권 출신 인사들은 ‘대북 전문가’가 5명이다. 이들 전원이 나노스 사외이사직을 맡았다.

‘대북 송금 관련 의혹’으로 구속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2011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쌍방울 사외이사, 고문 등으로 활동하다가 이재명 대표의 당시 경기도지사 선거캠프에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2018년). 이재명 대표 당선 이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임명되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대북사업 관련 편의를 봐주고 억대의 법인카드와 측근에 대한 허위 급여 등 형태로 수억 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8년 경기도 평화부지사 취임 이후 경기도의 대북사업 창구 역할을 맡았던 아태평화교류협회에 쌍방울과 KH그룹은 약 17억원을 기부했다.

쌍방울그룹 관계자들은 “의심이 지나치다”라고 항변한다. 김성태 전 회장의 과거 이력과 쌍방울 인수 이후 사업들은 별개라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과거 주가조작 사건 판결문을 설명하면서 쌍방울은 ‘정상 기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1심 판결문을 보면, 당시 재판부는 “시세 조종 기간이 길고 부당하게 챙긴 이익이 크다”라면서도 “현재 쌍방울이 건실한 기업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라고 양형 사유(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를 밝혔다. 해당 1심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다만 김성태 전 회장은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외화 밀반출 및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뇌물·정치자금을 건넨 혐의 일부는 인정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 역시 김 전 회장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2022년 12월2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에 참석한 이화영 전 부지사 측은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김성태 전 회장은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의 또 다른 한 축인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 핵심 인물 〈머니투데이〉 부국장 출신 김만배씨와도 공통분모가 있다. 이한성씨와 최우향씨다. 이한성씨는 이화영 전 부지사가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현재 대장동 개발사업 총괄을 맡은 회사 ‘화천대유’의 공동대표다. 천화동인 1호의 사내이사로 활동했다. 천화동인 1호는 대장동 사업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법인으로 김만배 전 부국장 소유다. 현재 천화동인 1호의 재산이 실제 김만배 전 부국장의 것인지, 이재명 대표와 측근들의 것인지를 두고 대장동 사업자들 간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최우향씨는 김만배 전 부국장에 대한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2021년 10월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나타나 함께 이동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취재진에게 “만배 형님과 20년 가까이 됐다”라고 밝혔다. 최씨는 과거 전남 목포 지역 폭력조직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철거 현장 용역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세력을 키웠다. 2010년 김성태 전 회장이 쌍방울을 인수한 직후 입사해 대표이사와 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최씨는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 전 회장과 함께 수사를 받기도 했다. 2020년 6월 최씨가 운영하던 ‘에이펙스인더스트리’는 화천대유에서 3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돈으로 한 중소기업을 인수했다. 이를 두고 주가조작을 하기 위해 ‘기업 사냥’을 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씨는 2021년 9월 화천대유에 입사했다. 대장동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김만배 전 부국장의 재산 분산 등을 목적으로 입사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한성씨와 최우향씨는 최근 김만배 전 부국장의 대장동 개발수익과 재산을 대신 숨겨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김 전 부국장이 변호인 접견 과정에서 재산 현황과 은닉 방식을 알리면, 최우향씨가 이를 건네받아 이한성씨에게 전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김만배 전 부국장의 현금과 수표를 출금해 오피스텔·금고 등에 숨기거나 부동산과 사채에 투자했다. 또한 높은 이자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서 재산을 쪼개 분산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이 추적 중인 김만배 전 부국장의 재산 일부가 쌍방울 CB에 흘러 들어가 세탁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2021년 10월15일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왼쪽).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는 인물이 최우향씨다. ⓒ연합뉴스

검찰 출신 변호사 영입 ‘신의 한 수’

김만배 전 부국장과 김성태 전 회장의 공통된 검찰 인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재식 검사가 특히 주목받는다. 그는 2011년 8월 쌍방울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김성태 전 회장이 쌍방울-유비컴 주가조작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변호를 맡았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대표변호사였던 법무법인 강남에서 일하며 2016년 박 전 특검과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서 특검보로도 활동했다. 앞서 대장동 민간개발업체에 대출을 알선한 브로커로 지목된 조우형씨 변호를 박 전 특검과 함께 맡기도 했다. 최근 공개된 정영학 녹취록에서 ‘대장동 일당’은 당시 양 변호사 영입을 ‘신의 한 수’라고 치켜세웠다.

김만배 전 부국장과 쌍방울, KH그룹은 돈으로도 얽힌다. 김만배 전 부국장은 2019년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인척이자 위례·대장동 사업 분양 대행업체 대표 이기성씨에게 109억원을 전달했다. 이씨는 이 가운데 100억원을 토목업자 나석규씨에게 건넸다. 나씨는 이후 30억원으로 KH건설이 설립한 에프앤디투자조합 지분 25만 주를 샀다. 당시 KH건설은 대양금속 인수를 위해 투자조합을 세웠다가 나씨에게 팔았다.

KH건설은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서 쌍방울 CB 100억원어치를 사들인 앞서의 ‘착한이인베스트’와 관련이 있다. KH건설과 이 회사의 최대주주 장원테크(KH그룹 계열사)는 2019년 착한이인베스트에 각각 20억원과 30억원을 빌려줬다. 김만배 전 부국장의 재산을 은닉한 혐의로 구속된 이한성 화천대유 공동대표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 전 부국장이 KH그룹이 매각하려던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주차장 부지를 매입하려 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KH그룹 측은 “대양금속, 착한이인베스트와의 거래 모두 대장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김만배씨의 주차장 매입 시도는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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