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만에 알게된 해외입양의 진실 "부모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원태성 기자 2023. 2.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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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거래된 아이들]②13살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씨 인터뷰
고아원 맡겨진 날 해외입양 결정…"입양수수료 3000달러, 우린 팔려갔다"

[편집자주] 1970~1980년대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명암이 뚜렷하게 공존하고 있다. 당시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들이 친부모가 살아있는 아이를 호적상 '고아'로 조작해 해외로 입양을 보낸 것은 불법 인권침해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지난 64년간 해외로 입양된 아동만 약 16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인원이 고아로 조작됐는지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없었다. 뉴스1은 최근 한 달 간 법무부·경찰청·보건사회부의 기·미아 통계와 각종 논문·연구 결과를 분석하고 이제는 성인된 '고아호적' 입양아를 직접 만나 해외로 거래된 아동들의 실태를 추적해봤다.

1984년 13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씨(50)ⓒ 뉴스1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전라남도 00군 00면 0000번지"

프랑스로 입양됐던 1984년 당시 13살이었던 김유리씨(50)는 시간이 지나도 유년시절 살던 살던 곳의 주소를 결코 잊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친부모와 재회할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였다.

그는 11살 때까지 누구보다도 평범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후 부모님의 이혼 등 형편상 잠시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맡겨졌다.

김씨에 따르면 해외입양아들 대부분은 한국에서의 기억을 애써 잊으려고 한다. 해외로 입양을 보낸 부모의 무책임함에 대한 배신감, 입양기관에서 당했던 학대들이 트라우마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씨 또한 입양을 간 이후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이 부모한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김씨가 부모님이 아닌 외할머니를 먼저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씨는 부모님과 재회 후 한참이 지나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부모님들이 김씨를 해외 입양 보내는데 어떠한 동의도 한 적이 없었고 입양 서류에는 김씨가 고아로 명시돼 있었던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확인한 결과 김씨의 입양서류에는 부모님이 아닌 고아원 관계자의 서명이 후견인 자격으로 동의란에 명시돼 있었다. 부모 어느 누구도 김씨의 입양을 동의 하지 않은 셈이다.

가족과 생이별해 해외에서 온갖 수난을 겪던 김씨의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죽을때까지 못볼 거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살았다고 한다"며 "국가는 나에게,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것인가"

김씨는 지난해 1월부터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을 통해 자신의 입양 과정을 되짚어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입양기관의 불법행위 증거들을 찾아 한국 입양 제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UN 등 국제 사회에 공개할 계획이다.

김유리씨와 남동생이1984년 프랑스로 입양됐을 때 사진.ⓒ 뉴스1

◇ "하루만에 입양결정돼, 입양수수료 3000달러…우리는 팔려간 것"

김씨는 인터뷰 도중 사진 한장을 건냈다. 사진 속에는 입양가기 직전인 1983년 12월23일 김씨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김씨 남매의 입자서류가 작성된 바로 그날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프랑스 양부모집을 방문했을 때 이 사진을 발견하고 놀랐다. 사진이 붙어있던 서류에 내 입양이 결정된 날이 1983년 12월23일이었다"고 했다. 고아원에 들어오자 마자 해외 입양절차가 진행된 셈이다.

김씨에 따르면 해외에서 입양을 원한다는 수요가 있으면 한국의 입양기관과 정부는 입양과 관련된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해외입양 수수료가 붙어 있었다.

김씨가 프랑스로 입양갈 당시 입양수수료는 3000달러였다. 이는 김씨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1989년5월10일 동아일보에는 '국민소득 4000 달러를 달성한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5000 달러의 입양보조금에 해외가정으로 팔려가는 어린이들이 한 해 6000명씩 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80년대 초 약 1년 정도 국내 한 입양기관에서 일했던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국내 입양보다 해외 입양 수수료가 10배 이상 높았다"며 "해외 입양의 경우 추후 관리면에서 국내 입양보다 할일이 적기때문에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내려고 한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수료는 우리나라 입양기관과 해외 파트너 에이전시가 배분해서 가져갔다. 하지만 이 수수료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다. 해외입양아들 대부분이 "우리는 물건처럼 팔려갔다"고 호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씨는 "당시 해외입양은 아동을 위해 새 가정을 찾아주는 게 아닌 입양 부부들을 위해 아동을 구해주는 사업이었다"며 "우리는 이런 사업 과정에서 물건처럼 팔려나갔다"고 주장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50차 전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1.17/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진실조사 개시 "한국정부는 우리를 버렸다" 입양아들의 울분

해외입양아들이 과거 해외 입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와 기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직접 움직이고 있다.

현재까지 해외입양인 371명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해외 입양 과정에 전반에 대한 조사를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2월 "해외입양 과정에 국가 등의 불법행위와 아동과 친생부모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이 중 34건에 대해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해외 입양인들의 조사 신청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조사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김 씨 또한 지난해 1월부터 진실 규명을 위해 자신의 입양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와 입양기관의 불법행위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한국 입양 제도에 대한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UN 등 국제 사회에 공개하는 것이다.

김씨는 "일부 사람들은 입양 가서 잘 살았고 불어도 배웠으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문도 모른채 부모님이 있는 곳을 떠나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살아봤으면 그런말 하지 못한다"며 "우리는 입양을 원한 적이 없고 국가와 기관으로 부터 희생된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이어 "많은 해외 입양아들이 한국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도 "개인적인 정보는 우리 입양인들만이 열람할 수 있다. 힘들더라도 진실을 규명하고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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