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의 시대]④ ‘팝업 광풍’의 이면...상가임대차법 피하기 ‘꼼수’

김은영 기자 입력 2023. 2. 6. 06:00 수정 2023. 2. 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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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임대’, ‘단기 임대’로 공실 메우는 건물주들
시세보다 월세 더 받고, 새 임차인 구하면 퇴거 요청
단기 임대는 상가임대차법 보호 못 받아
팝업 유행으로 임대료 억대로 뛰기도... “소규모 사업자는 팝업도 못 해”
단기 임대 안내 현수막을 건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건물. /김은영 기자

“가로수길에서 30~40평(99~132m²) 매장을 단기 임대하려면 한 달에 최소 4000만원은 줘야 합니다. 보증금이 없는 대신 철거비가 추가로 300만~500만원 정도 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것도 전성기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 거죠. "

지난 1일 만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팝업스토어(임시매장)를 열 단기 임대 매물을 찾는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세로수길과 같은 뒷골목은 한 달 임대료가 3000만원”이라며 “주 단위로도 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성수동과 가로수길 등 소위 핫플레이스(명소)라 불리는 거리에선 ‘팝업 임대’, ‘단기 임대’ 안내문을 붙인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상가 공실이 늘면서 단기 임대차를 대안으로 삼는 건물주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 입장에서 매출 부진 등의 이유로 임차인이 빠져나가면 다음 임차인을 찾아 공실을 메우는 게 상식이지만, 임대 기간을 10년간 보장해야 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생각하면 선뜻 그럴 수 없다. 임대료를 낮춰 임차인을 구하느니 ‘시세’에 맞는 임차인을 찾는 게 더 수지타산에 맞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적절한 임차인을 구할 때까지 주~월 단위로 단기 임대를 해 공실에 따른 손실을 메우는 팝업 임대가 선호되는 양상이다.

단기 임차인을 찾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의 한 건물 2층. /김은영 기자

단기 임대는 보증금이나 권리금 없이 일정 기간의 월세를 한꺼번에 미리 지불하는 임차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세보다 좀 더 높은 가격에 월세를 계약하고, 철수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건물주에게 주기도 한다.

과거 ‘눈물의 땡처리’, ‘폐업 정리’ 등의 현수막을 걸고 비어 있는 매장에서 한시적으로 속옷과 잡화 등을 파는 ‘깔세’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단기 임대는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기간을 정하지 않거나,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1년으로 본다. 그러나 일시 사용을 위한 임대차임이 명백한 경우 이 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즉 3개월간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려다 건물주가 임차인을 구했다는 이유로 한 달 후 퇴거 요청을 해도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최근 팝업스토어 운영을 대행하는 업체들이 성행하는 이유도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행 업체들은 건물의 특정 공간을 장기 계약한 후 다시 원하는 업체에 단기간 전대해 수수료 등을 챙긴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센터장은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려면 카드 결제 시스템 등을 구축해야 하는데 일주일 운영을 위해 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건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라며 “대행 업체들이 결제 시스템 등 점포 운영을 위한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전대하는 방식이 최근 팝업 시장에선 보편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인들 역시 안정적인 임차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홍대, 성수 등 주요 상권일 수록 대행 운영 방식이 정착됐다는 게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팝업스토어 운영을 종료하고 철수 중인 성수동의 한 팝업 공간. /김은영 기자

대기업들의 팝업스토어가 성행하면서 단기 임대료를 터무니없이 높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수동이나 가로수길의 경우 한 달에 몇백만원 수준이던 단기 임대 비용은 최근 들어 수천만원~1억원대로 치솟았다.

실제 지난해 성수동에서 한 달여간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한 식품 대기업의 경우 4억~5억원 정도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에서 장사하다 오프라인 팝업 매장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성장 기회를 마련하려던 소규모 기업들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금액이다.

신사동의 한 부동산 사장은 “과거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면 임대료를 내고 남을 만큼 상품 매출이 좋았는데, 지금은 매출을 보장할 수 없다”며 “대기업들이 임대료를 크게 올려 실거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했다.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등 유통업체들이 최근 팝업 공간을 늘리는 이유도 입점 업체와 불공정 계약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과거 유통 플랫폼들은 상품기획(MD) 개편 등을 이유로 입점 업체들에 매장 위치 이동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했으나,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백화점과 중소 입점업체 간 거래관행 개선방안’에 따라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한 업체는 최소 2년 이상 입점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 아웃렛 관계자는 “장사가 안되면 새로운 브랜드나 상품으로 바꿔야 하는데, 입점 업체에 이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점포 중간중간 팝업 공간을 구성해 단기 입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잘 만들어진 팝업스토어의 경우 한 달 매출을 3일간 벌 수도 있어 단기 임대를 선호하는 업체도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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