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융당국,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 추진 않는다

정해용 기자 2023. 2.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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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의무 소각 제도 도입 거론됐지만 검토 않기로
“기업 경영권 방어수단 없어진다” 반발 의식한 듯
취득 목적 공시 강화로 선회

금융당국이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후 의무적으로 소각하는 방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최근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대부분 소각하는 미국과 달리 이를 보유해 다시 매물로 내놓거나 최대주주 등 경영진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자사주를 사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당국이 소각 의무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당기순이익을 유통 주식 수로 나눈 값)이 증가하고 1주에 돌아가는 배당금도 늘어나 주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기업들이 종종 주가부양을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다. 그러나 자사주 취득 후 소각하지 않으면 기업이 다시 자사주를 매도할 가능성이 있어 잠재적 매도 대기물량(오버행)에 대한 우려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금융당국이 자사주 의무 소각 방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법으로 강제하면 기업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고 경영 자율권 침해의 소지도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12개 정책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일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사주 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려 하지만 자사주 의무 소각 방안은 정책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위는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할 때 이에 대한 취득, 처분 목적 등에 대한 공시를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올해 금융위 업무보고에서도 금융위는 올해 4분기(10~12월) 중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 강화 등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사주를 의무 소각하는 방안은 추진하지 않더라도 자사주를 취득하면 향후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구체적으로 공개해 투자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금융위가 자사주 의무 소각 방침을 접은 것은 기업의 자율권에 속한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하면 상당한 부작용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사주를 자산으로 보는 상법을 개정해야 하고 자사주를 취득한 후 처분해 차익이 발생하면 과세하는 현행 법인세법도 고쳐야 한다. 또 기업들은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해 신설 지주회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등으로 활용해 왔는데 이런 방식이 제한되면 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도 어려워질 수 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현재 상법이 자사주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필요할 경우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는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라면서 “갑자기 모든 자사주를 소각하라고 하면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장 큰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지고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 팀장은 “세법상에서도 자사주를 갖고 있다 매각해 시세차익이 나면 이를 과세해왔고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권고해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활용한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었다”라면서 “이렇게 다양한 문제와 맞물려 있는 자사주를 의무 소각하라고 하면 기업들은 크게 반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자사주 의무 소각 제도를 도입한다면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미 경영권 방어 등 다른 목적으로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지다”라면서 “재계를 중심으로 강하게 반발할 수 있는 문제라 금융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금융감독원과 DS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자사주 소각은 65건으로 전체 자사주 매입 건수의 13.2% 수준에 그쳤다. 최근 3년(2020년 1월~ 2023년 1월)간 가장 많이 자사주를 소각한 곳은 반도체 검사장비 사업 등을 하는 디아이로 발행주식의 10.1%인 319만6785주를 소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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