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난방비 폭탄’이 일깨워주는 한국 경제의 숙명

강경희 논설위원 2023. 2. 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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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무역적자 472억달러
중동 4국 적자만 762억달러
원유·가스 비싸게 사고
중동 가서 되벌어야 하는
자원 빈국의 반복되는 운명
그래도 승산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16일 오후(현지시간) UAE 아부다비 알다프라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에서 열린 3호기 가동 기념식에 참석해 손뼉 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18/뉴스1

‘수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수입은 격증(激增)을 거듭하고 있다. 올 들어 9월 말 현재로 수출은 34억2600만달러인데 수입은 50억7700만달러에 달하여 무역적자가 16억5200만달러나 된다. 이 9개월 동안 수입은 작년 말에 비해 70%가 늘고 그 적자는 작년 한 해 동안의 10억1500만달러보다 60%나 부푼 것이다.’

숫자만 바꿔 넣으면 지금 상황인 듯한 이 글은 1974년 11월 1일 자 조선일보 사설 내용이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한국 경제는 백척간두에 섰다. 1973년 3억달러였던 원유 수입액이 이듬해 11억달러가 됐다.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보이며 국가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물가가 급등해 민생고가 극심했다. 정부는 위기에서 벗어날 방안을 백방으로 찾았다. 당시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이 ‘중동 진출 방안’ 보고서를 올렸다. “중동이 넘쳐나는 오일 머니를 경제 건설에 쏟아부을 것”이라는 정보를 외국 손님에게서 듣고 작성한 보고서였다. 귀담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들의 중동 진출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오일 쇼크로 인한 외환위기는 오일 쇼크로 부자가 된 중동에서 처방책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1974년 4월 중동에 첫 번째 각료급 사절단을 파견했다. 장예준 상공부 장관이 기업인들을 이끌고 2주간 중동 방문에 나섰다.

대통령 요청으로 전경련 회장단 긴급회의가 열렸지만 기업들은 머뭇댔다. 해외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큰 승부사 정주영은 달랐다. 동생 정인영 부회장의 만류에도 중동 출사표를 던졌다. 1975년 10월 바레인의 아스리 조선소 공사 수주에 이어, 1976년 무명의 현대건설이 세계적 건설사들을 누르고 최저가 입찰로 9억4000만달러짜리 사우디의 주베일 항만 공사를 따냈다. 그해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기업이 앞장서고 정부가 밀어줘 중동 붐을 일으켰다. 비싸게 지불한 기름값을 우리 근로자들이 사막에서 피땀 흘리며 도로 벌어왔다. 그것이 한국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됐다.

30여 년이 흘렀다. 2009년 11월 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도 UAE 왕세제는 통화를 미루고 미뤘다. “나라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UAE 원전 수주의 실권을 쥐고 있는 모하메드와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UAE는 중동 국가 최초로 원전을 짓기로 했다. 원전 수출은 미국·프랑스·일본이 주도했다. 원전 수출 경험이 없는 한국 대신 UAE는 프랑스로 기울었다. 현대건설 재직 시절 중동 붐과 중동 왕족의 영향력을 경험했던 이 전 대통령은 “기왕에 안 된 것, 전화한다고 해서 더 손해 볼 것도 없지 않냐”며 참모들 만류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연결된 통화에서 “짧은 기간에 발전한 한국의 경험이 어느 선진국보다 도움이 될 것” “양국이 신뢰를 갖고 형제 국가 같은 관계를 맺자”고 설득했다. 닷새 뒤 왕세제가 “한국 이야기를 들어보고 5주 후쯤 최종 결정하겠다”며 입찰 연기를 알려왔다. 행운의 여신이 살짝 얼굴을 보여주려는 순간이었다. 그 일주일 뒤 한승수 전 총리를 단장으로 40여 명의 대표단이 UAE로 급파됐다. 그해 12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아부다비로 초청된 자리에서 한국의 원전 수주가 최종 발표됐다.

다시 13년이 흐른 지난 1월, UAE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은 다르다”는 극찬과 함께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3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받았다. 바라카 원전을 결정했던 그 왕세제가 이제는 UAE 대통령이 되어 내린 결정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행운은 없다. 대한민국 경제의 성공은 더더욱 그랬다. 300억달러 투자 유치는 원전 수출 1호를 가능케 한 2009년 11월의 물밑 협상에서 출발했고, 그 역전극은 다시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동에서의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주었다.

‘난방비 폭탄’에 50년 전의 오일 쇼크가 떠오른다. 경제 규모는 100배 넘게 커졌지만 생존 전략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다는 게 명료해진다. ‘자원 빈국’의 고난기가 ‘자원 부국’엔 호황기다. 우리의 만성 무역 적자국은 일본·독일 같은 기술 선진국을 제외하면, 자원 수입국으로 고착화됐다. 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UAE·카타르·쿠웨이트 4국에 대한 무역 적자만 1년 전보다 76% 늘어 762억달러다. 전체 무역적자(472억달러)보다도 많다.

오일머니 덕에 중동 경제는 끓고 있다. 그 돈을 저탄소 경제 건설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싸게 사오고, 중동 가서 그 돈을 다시 벌어와야 하는 한국 경제의 숙명도 반복되고 있다. 먹고살만해졌다고 펑펑 쓰고 샴페인 터뜨리며 놀 수 없는 팔자다. 바위를 끝없이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신화 비슷하다. 그래도 50년 전보다는 낫다. 신뢰도, 기술력도 꽤 쌓여 도전해봄 직한 ‘제2의 중동 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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