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손길] 우리나라 첫번째 포퓰리스트 대통령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큰 문제는
민주적 정치과정 존중 안 하는 것
정당은 없고 대통령만 있는 전대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냐고?
이렇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발언은 ‘핵 포퓰리즘’(nuclear populism)이다.” 지난 1월25일, 세계적인 미국의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기금’에 게재된 전문가 의견이다. 글쓴이는 슈테펜 헤르초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원과 로런 수킨 런던 정경대 교수이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 대통령을 우리나라의 “첫 번째 포퓰리스트 대통령(Yoon-the country’s first populist president)”으로 묘사했다.
이들은 그 근거로 핵무장에 71%가 넘게 찬성하는 지난해 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포퓰리즘’을 우리말로 흔히 ‘대중영합주의’로 옮기곤 하는데 바로 이 맥락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더 많은 의견을 따른 정책발언이라고 대중영합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해야 하는데 이것이 알고 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대중이 선호하는 의견에 맞춰 지지를 얻고자 했다는 점에서 ‘대중영합적’이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두고 ‘포퓰리스트’라고 표현한 해외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의 주간지 타임 역시 ‘2022년 100명의 영향력 있는 인물’에 소개하며 정확하게 ‘포퓰리스트 지도자’(populist leader)라고 쓰고 있다. 더하여 윤 대통령이 대선기간 동안 ‘지지를 얻기 위해 반페미니즘 레토릭을 무기화하여 정치적 분열에 불을 붙였다’는 설명을 달아 놓았다. 21세기 들어 (주로 아웃사이더) 정치인이 사회적 약자들을 갈라쳐서 지지를 동원하는 현상을 ‘우파 포퓰리즘’이라 부르는데, 타임은 이 맥락에서 ‘포퓰리스트’라고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타임뿐만이 아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 신문인 시드니 모닝 헤럴드 역시 윤 대통령의 당선을 알리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첫 번째’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나왔다고 썼다. 이렇듯 해외에선 윤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부터 포퓰리스트로 보는 사례가 있었다. 여기서 더 시선을 끄는 대목은 윤 대통령을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첫 번째’ 사례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왜 윤 대통령을 ‘첫 번째 포퓰리스트 대통령’이라 본 것일까? 앞에 언급한 논자들과 언론이 명료하게 그 이유를 따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윤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아웃사이더’ 출신이라는 점이다. 더하여 ‘기존의 정치를 강하게 불신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포퓰리즘은 기성 정치인과 정치과정에 질려 있는 사람들의 정치혐오를 자양분으로 삼기에 ‘기존의 정치를 불신하는 아웃사이더 지도자’는 포퓰리즘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런 지도자가 우리나라에, 동아시아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 특히 여성·외국인 노동자·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갈라치며 지지를 얻는 데 익숙한 우파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대체로 민주적 정치과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통치 기간 내내 이들은 기존 정치과정을 존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혐오와 차별을 확산했고, 대선 이후에는 지지자들이 선거결과에 불복하며 국가가 내전을 걱정할 만큼 분열되었다. 한마디로 두 나라는 민주주의가 무너질 뻔한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대선 이후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다. 지난 대선은 국가적 차원에서 갈라진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지만 정치는 그 어떤 사회적 통합의 메시지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 없는 정치’의 시간은 현재진행형이며 그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다. 더 심각하게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보듯 대통령과 그 관계자들이 민주적 절차의 핵심인 선거 과정마저 크게 훼손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가장 기초적 토대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있는 선거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선호에 맞춰 국민지지율 1위인 후보를 가로막기 위해 경선규칙을 전당대회 직전에 바꾸는 행태, 당원지지율 1위인 후보를 밀어내기 위해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와 의원이 나서 집단 린치를 가하는 행태가 공개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 모두 선거개입이나 다름없다.
정당은 사라지고 대통령만 있는 전당대회.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냐고? 이렇게 민주주의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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