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집에 머무르는 ‘겨울’, 볼 것이 많은 ‘봄’

엄민용 기자 2023. 2.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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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겨울은 대부분의 생명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계절이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겨울이면 그동안 산과 들로 바삐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다. ‘겨울’이라는 말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머무르다”를 뜻하는 옛말 ‘겻다’가 ‘겨울’의 어원이다.

이런 겨울이 지나면 햇볕이 따뜻해지고 사람들은 다시 집 밖으로 돌아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 해가 다시 시작되고 한동안 움츠려 있던 생명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세상에는 볼 것이 많아진다. 그래서 ‘봄’이다. ‘보다’의 명사형이 계절을 뜻하는 말로 굳어진 것이다. 불(火)의 옛말인 ‘블’에 ‘오다’의 명사형 ‘옴’이 더해져 ‘블옴’으로 불리다가 ‘봄’이 됐다는 설도 있다. 결국 봄은 ‘날이 따뜻해지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생명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절’이다.

설에 이어 입춘까지 지났으니 날짜만 놓고 보면 지금은 분명 봄이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이 차다. 겨울은 쉬 물러나지 않고, 봄은 더디 오는 느낌이다. 이런 때를 가리켜 흔히 간절기(間節氣)라고 부른다. 그러나 간절기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한자 ‘간(間)’이 “사이”를 뜻하므로, ‘간절기’라고 하면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시작될 무렵의 그 사이”가 된다. 겨울과 봄 또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어떤 계절적 특성을 보이는 기간이 따로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계절과 계절 사이에 특정한 기간이 따로 있지는 않다. 계절은 어제와 오늘이 확 다르게 나뉘지 않고, 두 계절이 섞여 있다가 시나브로 바뀐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는 때를 가리키는 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것은 환절기(換節期)다. 반면 ‘간절기’는 우리말샘에만 올라 있다.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환절기를 다른 말로 변절기(變節期)라고도 한다. 이때의 ‘변절’은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꿈”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정치판이 늘 그러하지만, 변절기인 요즘에 우리 정치판에는 변절의 바람이 유난히 강하게 불고 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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