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곁이 되어준 이의 이웃이 된다는 것
“욕해도 돼요. 교회가 바뀌어야죠.”
‘혐오’라는 단어가 사회에 만연해지면서 ‘세력’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보수 교회와 보수 정치가 서로를 등에 업고 득세하며 ‘인권은 독재’라고 비난하던 때였다.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다는 유감 섞인 목소리가 쏟아지는 중에도 임보라 목사님의 발언은 힘이 되면서도 묘한 쾌감을 줬다.
20년 전 청소년 성소수자 육우당이 교회의 혐오를 지탄하며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난 즈음, 목사님은 다른 종교인들을 모아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를 기리는 추모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애도받지 못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사람을 모았다. 2012년 학생인권조례를 사수하기 위한 농성에서는 성소수자를 면전에서 비난하는 이들에 일선에서 맞섰다. 집회를 하면 행진 선두에서 축하기도를 열며 당신 가는 길에 빛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제주 강정마을, 철거투쟁 현장을 비롯하여 사회에서 이름을 지우고 자리를 박탈하는 데 저항하고 싸우는 자리에 목사님이 있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도 목사님은 혐오로 점철된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야를 틔워주었다. 따로 부르지 않아도 목사님은 집회와 농성장에 조용히 찾아와 응원을 건넸다. 때로는 격한 방식으로 변화와 평등을 주장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당신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감각하게 했다. 눈물을 쏟아내던 퀴어 친구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는 사회에 믿을 구석 없는 이들에게 언제라도 자리를 내어줄 그루터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교파에서 이단으로 지목되고 ‘사탄’과 ‘독사’로 공격당하기도 했다. 같이 웃어넘기고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제 터전에서 동료 종교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자리를 부정당하는 데 대한 상처와 실망에 대해서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어쩌면 목사님은 우리 곁을 지키며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 보듬고 쓰다듬어줄 사람으로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임보라 목사님의 부고가 익숙하지 않다. 언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곁을 지키던 이의 부고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막막하다. 당신 또한 교회와 사회의 변화를 바라며 다른 자리에서 곁이 되었던 동료이고 이웃임을 새삼 되뇌었다.
곁이 된다는 것은 거창하게 진지하고 무거운 선언이기만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변화를 실천하면서 어떤 책임과 역할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용기 있게 곁이 되고 함께 싸웠던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의 명복과 평안을 기도하며, 누군가의 곁이 된다는 것이 어떤 빛이 될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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