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그 이후 그렇게
암 수술 이후 재발 여부를 검사 받는 시간, 기나긴 터널 속에서 빛을 보러 달려가는 두려움처럼 춥고 어둡다. 생각보다 길어 빛이 오래도록 보이지 않으면 불안과 공포로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수술한 부위가 깨끗하긴 한데 종양이나 자그마한 결절이라도 나타난다면 그건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돌려보면 살아가면서 전에 없던 무언가가 몸속에 나타났다고 너무 공포에 시달릴 필요는 없지 싶다. 우리 몸에 무엇인가 나타난다는 게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 나이 들며 얼굴에 기미와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는 걸 받아들이듯 내 몸 어디든 종양이나 혹 같은 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미리부터 건강염려증에 빠져 건강 쇼핑을 하고 돈과 시간을 소비하다 보면 좋아지기는커녕 걱정 탓에 면역력만 떨어져 오히려 없던 병도 생길 수 있다.
살아 있는 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다독일 줄 알아야 한다. 숫자놀음에 너무 놀아나서도 안 된다. 일례로 결절이 생기면 암에 걸릴 확률이 10배나 높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상대적 비율이다. 결절이 있는 사람 100명 가운데 5명이 암에 걸리고 결절이 없는 100명 가운데 0.5명이 암에 걸린다는 말이다. 비율로만 보면 10배다. 10배라는 수치에 덜컥 걱정부터 앞선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절이 있어도 100명 가운데 95명은 평생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더 중요한 건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암 걱정이 있는 고위험군이라면 남들보다 자주 검사를 받으면 된다. 설령 암이 생기더라도 일찍 발견해서 지켜보다가 수상하면 흉강경으로 제거하면 된다. 중년 넘어 나이 들면서 몸에 일어나는 변화는 피하려 안달하기보다 버선발로 나설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목에 주름이 오면서 ‘어느덧’ 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리겠지만 그때부터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파 본 사람도 몸에 나타나는 증상이나 검사상의 수치로 불안해하기보다 늘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버릇을 들이자.
루이즈 에런슨의 ‘나이듦에 관하여’란 책에서 보면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현대인이 사방 천지 널렸다. 세상은 고사하고 내 인상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분노하고 낙심한다. 그런데 그게 우리를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든다. 그렇게 한껏 거부하기보다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나이 듦은 장점이 된다. 가정과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줄고, 삶의 지혜와 결정권은 늘어나 만족감을 키울 수 있다. 눈이 침침한 건 필요한 것만 보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건 연한 것만 먹으라는 것이란다. 그러니 이제 그 이후 그렇게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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