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같은 지하철, 다른 풍경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 차창 밖 획획 지나는 풍경은 낯설고 신기했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된 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지적장애인복지시설 거주인 대부분에게 이런 기억이 없단 사실에 깜짝 놀랐다. 대부분 겪어본 교통수단은 버스나 시설에서 운행하는 승합차뿐이었다.
이들은 왜 지하철이 낯설까. 10년 전 장애인들의 지하철 체험 프로그램에 동행한 적이 있다. 당시 태어나 처음 지하철을 탄 경애(가명·49)씨는 “기차처럼 생긴 게 지하로도 다닌다”며 마냥 신기해했다. 그러나 설렘은 금세 사라졌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대부분이 개찰구에서 너무 멀어 보물찾기처럼 쉬이 찾아지지 않았다. 남들에겐 단거리인 지하철 통로도 이들에겐 두세배나 많은 시간을 들여 구불구불 빠져나가야 하는 미로 같았다. 더 큰 문제는 휠체어 때문에 지하철 탑승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느 승객이 경애씨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재수없다”고 했다. 경애씨 표정은 금세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경애씨가 불편을 겪은 지하철 구조도, 장애인의 탑승을 기다려 주는 데 냉담한 사람들도 여전히 곳곳에서 목격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일부러 돕지 않는다거나 다 공격적인 건 아니다. 정확하게는 ‘기다려주는’ 문화에 익숙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내가 근무하는 곳의 지적장애인들은 동행 없이 혼자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시도했다. 승객들은 처음에 뭘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들 부탁받지 않고도 먼저 승·하차 벨을 눌러주며 서로를 도왔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대중교통을 타는 경험 자체를 갖는 게 서로에게 참 필요하구나 싶었다.
최근 일각에선 “서로 불편하니 그냥 모두가 편하게 장애인은 대중교통 말고 콜택시만 이용하게 하자”는 극단적 반응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갈등이 생긴다고 ‘장애인 전용 탈 것’과 ‘일반인 탈 것’을 철저히 구분하는 게 해법이 되진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장애인 콜택시는 수요보다 공급이 현저히 적고, “원하는 시간 이용은 하늘의 별 따기” “휠체어 타고 나가는 10분 사이 택시가 사라졌더라” “손이 불편한 장애가 있는데 차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등의 지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중교통의 ‘대중’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차별없는 단어여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곡해되진 않았으면 한다. 아직까지 우리는 서로와 친해질 기회가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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