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의 나락 한 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한 옛날 모세가 이집트에 살고 있을 때 이야기. 어느 날 모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걸 보고 그를 때려죽였다. 그리고 이집트 인근 ‘미디안’으로 달아나 남의 양 떼를 쳐주며 살았다. 한번은 양 떼를 치던 모세가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게 되었다. 하도 놀라워 가까이 보려고 다가갔더니 이런 말이 들려왔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 떨기나무가 있는 곳은 모세가 양 떼를 치던 곳과 ‘다른’ 땅이었다. 그곳은 거룩한 땅, 곧 하느님께 따로 ‘떼어 놓은’ 곳으로 거기에 들어가려면 의식을 거쳐야 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고대 세계는 온갖 ‘신’이 거주하는 거룩한 곳으로 가득했고 자연은 생명의 원천인 ‘어머니’로 공경받았다.
근대에 들어서자 상황이 급변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거쳐 데카르트에 이르러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균질한 기하학적 공간으로 변했다. 세계의 수많은 거룩한 곳이 여기나 저기나 모두 같은 곳이 되었다. 생명이 없는 자연은 주인 없는 물건 신세가 되어 자원의 창고나 부동산으로 변했다. 이제 어디서도 ‘신’을 벗을 필요가 없는 자연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이윤을 챙기는 데 골몰한다. 그러나 땅은 엄연히 살아 있고 그래서 땅의 신음은 깊어간다.
지난해 12월 말, 강원도 양양군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환경부에 접수했다. 2015년, 양양군이 새천년 들어 세 번째 신청한 오색케이블카사업은 엎치락뒤치락 싸움 끝에 2019년 환경영향평가서 부동의 처분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시장’과 ‘개발’을 이명박 행정부 뺨치게 내세우는 윤석열 행정부가 들어서며 케이블카사업도 다시 꿈틀대고 있다. 정부의 전 부처를 산업화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환경부는 벌써 환경세일즈부, 녹색산업부로 변신했다.
설악산 그대로 두는 게 백번 옳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산 전체가 천연기념물 171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또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보전연맹 엄정자연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전구역이다.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엄격하게 보전해야 할 곳이라는 뜻이다. 땅이란 땅은 모조리 부동산으로 만든, 돈만 된다 싶으면 경제 효과네 뭐니 하며 땅을 파헤치기 예사인, 웬만큼 이름난 산천은 죄다 유원지로 바꿔놓은 황금만능의 우리나라라 해도 설악산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고 이렇게 겹겹의 보호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설악산은 그대로 두는 게 백번 옳다.
그런데 이 개발이란 놈은 한번 내민 탐욕의 발톱을 거둘 줄 모른다. 산천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보면서도,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믿음은 갈수록 굳세진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환경영향평가’는 얼마나 손을 대도 괜찮은지 결정하는 법적 절차로, 그나마 통과의례가 돼버렸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일단 제출하면 그뿐, 혹시라도 반려되면 ‘보완서’를 내면 그만이다, 될 때까지. 자연은 문서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는 사실은 가볍게 무시한다.
도대체 인간이 무엇이기에 산에 거대한 쇠기둥을 박고 굵은 쇠줄을 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며 지배자라는 데카르트의 말은 무지나 착각 또는 오만일 뿐이다. 주인이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아주 고약한 이데올로기다.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는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의존적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뭇 생명을 먹여 살리는 땅과 풀과 나무가 참된 주인이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생태위기의 뿌리도 이 전도된 인식에, 이걸 알면서도 부정하는 아집에 있다.
땅에 대한 인간의 오만방자함을 내다본 듯 성서의 하느님은 이렇게 선언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사람은 땅에서 잠시 살다 지나갈 뿐이다. 땅은 개인의 것도, 사고파는 것도 아니라는 고대의 지혜는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한다. 산에 가는 것은 즐기는 것뿐 아니라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는 일, 발에서 ‘신’을 벗고 일상과 다른 곳, 다른 때로 들어가는 일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위로 올라가면 아래의 번잡함도 같이 따라가기 마련이다. 왁자지껄 떠들고 음악을 한껏 틀고 질펀하게 먹고 노는 일상이 재현되고 산은 도시의 소음 속에 저잣거리가 된다.
생명 뺏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우리가 오색케이블카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잠시 편리를 누리고 눈이 호강할진 몰라도, 설악산은 일그러지고 인근의 동식물은 자기 자리를 잃는다.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하나가 남의 자리를 뺏는 것이다. 그건 곧 생명을 빼앗는 일이다. 우리도 이 세계에서 모두 각자의 자리를 받았다. 그래서 살 수 있는 거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해당하는 말이다. 설악산은 수많은 생명체를 품은 ‘어머니’의 자리다. ‘신’을 벗고 설악산을 바라보자. 설악산을 그대로 두자.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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