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스텔스기 미사일 쏴 ‘풍선’ 격추…중 “국제관행 위반” 항의
지난달 알래스카 상공서 포착 후 ‘스파이 활동’ 의심 일어
미국 사회 긴장 속 시끌시끌…경찰 “총 쏘지 마라” 안내도
바이든 “격추” 지시 사흘 만에 출격…동부 해안에 떨어져
미국 정부가 4일(현지시간) 자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 정찰 풍선을 F-22 전투기 등을 동원해 격추했다. 미 본토 상공에서 중국이 보낸 ‘고고도 정찰기구’로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된 지 일주일 만이다. 중국 ‘스파이 풍선’을 둘러싼 파문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취임 후 첫 방중 연기로 이어지면서 미·중 간 긴장은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 격추 위해 스텔스 전투기 등 투입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북부사령부 소속 전투기가 중국이 보내고 소유한 고고도 정찰 풍선을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영공에서 성공적으로 격추했다”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정찰 풍선의 목적에 대해 “중국이 미 본토의 전략 시설을 감시하려는 시도로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오후 메릴랜드 헤어거스타운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1일 풍선에 대해 보고받은 직후 “국방부에 가능한 한 빨리 풍선을 격추하도록 지시했다”며 “성공적으로 이 일을 해낸 우리 조종사들을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버지니아 랭리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F-22 스텔스 전투기는 이날 오후 2시39분 미사일 한 발로 중국 풍선을 격추했다. 풍선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동부 해안에서 9.6㎞가량 떨어진 영해로 추락했다. F-22 외에도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소속 F-15 전투기, 오리건·몬태나·매사추세츠·사우스캐롤라이나·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출격한 공중급유기 등이 격추 작전에 참여했다. 해상에도 잔해 수거를 위해 여러 대의 함정이 대기했다.
인근 지역에서는 풍선이 떨어지는 모습이 육안으로 관측됐다. 머틀비치에 사는 사진작가 트래비스 허프스테틀러는 CNN에 “일반 풍선처럼 그 풍선은 그냥 터져버렸다. 해변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잘 보였다”고 말했다. 국방부와 연방수사국(FBI) 등은 수거한 풍선 잔해 분석 작업을 토대로 중국의 정찰 활동 관련 정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 미국을 혼란에 빠뜨린 괴풍선
미국 상공에서 중국의 정찰 풍선이 처음 포착된 때는 지난달 28일이었다. 알래스카 서쪽 알류샨 열도 상공에 진입한 이 풍선은 30일 캐나다 영공으로 넘어갔다가 하루 만인 31일 다시 북부 아이다호에 진입했다. 이후 5일간 남동쪽으로 미 본토 상공을 가로질렀다.
특히 1일 풍선이 최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 등을 보관 중인 격납고 150개가 있는 몬태나주 맘스트롬 공군 기지 상공에 도달하면서 미 군사 당국 내 긴장감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국방부가 2일 중국 정찰 풍선의 영공 침범 사실을 발표한 후 정치권 내에서는 격추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격추 시 버스 3대를 합친 크기로 알려진 풍선 잔해에 따른 지상 피해를 우려해 군 당국은 풍선이 영해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즉각 풍선 격추에 나서야 한다며 맹공했다. 직접 풍선을 격추시키겠다고 나서는 일부 시민들 탓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요크카운티 보안관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여러분의 총으로는 풍선에 도달할 수 없다”며 풍선 사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 블링컨 장관 방중 연기
기상관측 등 과학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민간용 비행선이 우발적으로 경로를 벗어난 것이라 주장해 온 중국은 이날 풍선이 격추된 후 강하게 항의했다. 미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관은 4일 항의 성명을 내고 “미국은 무력 사용을 통해 명백히 과잉반응하고, 국제 관행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면서 “중국은 관련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단호히 지킬 것이며, 필요한 추가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이 같은 설명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중국 측 설명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중국의 정찰 풍선이며, 민감한 군사 시설을 감시하고자 미국과 캐나다를 의도적으로 통과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결국 당초 5~6일로 예정된 블링컨 장관의 첫 방중을 전격 연기했다. 블링컨 장관은 3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 본토 영공에 있는 중국 정찰 풍선의 존재는 “미국의 주권과 국제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대좌한 미·중 정상이 ‘책임 있는 경쟁 관리’에 합의하면서 추진된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미·중 갈등이 다시금 악순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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