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추위, 객관적 수치로 보여줄 수 있다면…[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춥다. 정말 춥다. 최근의 매서운 추위로 인해 집에서는 매일매일이 ‘보일러 전쟁’이다. 자기 전에 필자가 보일러 스위치를 ‘연속 가동’ 상태에 두면 어느샌가 아내가 ‘예약 가동’으로 바꿔놓는다. 추위라면 질색인 나와 난방비라면 질색인 아내의 대립이 올해 들어 더 유난하다.
지난해 12월 가스비 고지서에 나온 금액에 대한 놀라움은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번 추위에 대한 민감함에 대해선 아내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나로선 곤혹이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하지 않으냐며 보일러 스위치를 슬쩍 내리려고 하는 아내에게, 내가 느끼는 추위를 수치로라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개인이 느끼는 추위를 수치로 표현할 길은 없다. 추위를 느낀다는 것은 온도로 표현되는 게 아니다. 기온이 얼마이고, 체감온도가 얼마인지로 표현할 수 없다. 똑같은 기온, 똑같은 체감온도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개별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문제는 진료 현장, 특히 한방의료기관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일이다. 추위에 예민한지, 더위에 예민한지 등에 따라 체질을 감별하기도 하고, 증상을 판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환자 개개인의 진술과 의사 개개인의 주관적인 진단에 주로 의존해 판단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부분이 현재 한의학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주관적인 지표를 정량화하거나 객관화하려는 시도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정밀의료’ 개념을 도입해 이를 검증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정밀의료는 ‘환자마다 다른 유전체 정보, 환경적 요인, 생활 습관 등을 분자 수준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해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의미한다’고 사전적으로 정의된다. 이를 위해 의료기술, 첨단과학, 방대한 의료기록을 이용하게 된다. 한의학 분야에서도 최근에는 첨단 바이오 기술과 의료기록 등을 활용한 정밀의료 분야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추위에 대한 예민함과 관련 있는 ‘한증(寒證)’ 연관 유전지표를 발굴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그동안은 이 증상을 진단하기 위해 환자의 진술에 의존하거나 의사가 맥을 짚거나 직접 만져보거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과 달리 환자들의 유전체 역학 정보를 분석해 관련 유전지표를 발굴했다. 유전지표를 통해 환자의 추위에 대한 민감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 것이다. 앞으로는 한의학 분야에서도 이런 정밀의료 개념을 활용한 연구가 점차 확대돼 나갈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첨단 바이오 기술은 한의학의 주관적인 진단을 객관화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기초연구에서 찾은 하나하나의 성과들이 임상에서 실제 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번 겨울 아내와의 보일러 전쟁도 나의 패배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나의 주관적인 추위의 강도는 아내의 객관적인 가스비 고지서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 정밀의료의 발전을 통해, 나의 추위의 너비와 깊이에 대해 아내가 공감할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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