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밖으로 나간 첫 AI, 달 표면 탐사 ‘내비게이션’으로 활약한다

이정호 기자 입력 2023. 2. 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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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의 소형 무인차량 ‘라시드’ 4월에 달 착륙
올해 4월 달에 착륙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소형 무인 탐사차량인 ‘라시드’가 월면을 주행하는 상상도. 지구 밖으로 나간 최초의 인공지능(AI)이 탑재돼 지형 정보를 분석한다. MBRSC 제공
카메라에 찍힌 월면 즉시 분석, 지형 요철 파악해 주행
달 상주기지 건설 공사와 물·광물 채취에도 활용 예상

# 우주선 조종석에 앉아 창 너머 검은 공간을 응시하던 승무원이 입을 연다.

“우주선 외부 문을 열어.” 그러자 어딘가에서 “미안합니다만, 그럴 수가 없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황한 승무원은 즉시 “그게 무슨 말이지?”라며 되묻는다. 그러자 이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대화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겠습니다”라고 대꾸한 뒤 입을 닫아버린다.

오가는 말을 봐서는 사이가 틀어진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탑재된 인공지능(AI) ‘할(HAL) 2000’이 우주로 내쳐진 동료 승무원을 구하라는 또 다른 승무원의 요청을 거부하는 대목이다. 할 2000은 사람과 막힘없이 소통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의지를 실어 독자적인 판단까지 한다.

1968년 개봉한 미국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인데, AI는 이 영화에서 극도로 발달한 기술 문명의 상징이다. 하지만 영화 개봉 뒤 흐른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도 이런 AI는 최근까지도 개발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두 달 새 상황이 급격히 달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AI 챗봇 ‘챗GPT’ 등장 때문이다. 챗GPT는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췄다. 시를 짓고, 시험 문제를 푸는가 하면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한다. 문명을 도약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제가 어려워지는 AI의 등장이 머지않은 것 아니냐는 걱정마저 제기될 정도다.

AI의 활용 범위는 이제 곧 지구라는 공간까지 넘어선다. 지구 밖으로 나간 최초의 AI가 앞으로 두 달 뒤인 올해 4월 달에 착륙한다. 이 AI는 달에서 탐사차량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향후 달에서 물과 광물을 찾는 데에도 응용될 것으로 보인다.

■ 달에 등장할 ‘AI 내비게이션’

최근 미국 과학전문매체 스페이스닷컴은 지난해 12월 로켓에 실려 지구를 떠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무인 탐사차량 ‘라시드’가 올해 4월 달에 착륙해 임무를 개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라시드는 중량 10㎏, 길이와 폭이 각각 53㎝인 소형 차량이다. 임무 기간은 약 14일이며, 고해상도 카메라 등으로 월면을 찍는다.

라시드가 주목되는 건 인류 역사상 지구 궤도를 벗어난 첫번째 AI 장비이기 때문이다. 탑재된 AI는 캐나다 기업 MCSS가 개발했다. 인간의 우주 진출은 1950년대에 시작됐지만, AI는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최근까지도 우주비행 과정에서 AI의 힘이 필요하다면 지구의 관제소 컴퓨터를 이용했고, 여기서 나온 분석을 지구 밖 탐사선에 전달하는 방식을 썼다. 절차가 번거롭고 시간도 걸렸다.

MCSS는 아예 월면 탐사차량에 AI를 내장했다. 이 때문에 더 빨리 정보처리를 할 수 있다. 빠른 정보처리가 필요한 이유는 AI를 달에서 내비게이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라시드에 들어간 AI는 카메라에 잡힌 월면 영상을 즉시 분석해 움푹 파인 충돌구와 쭉 뻗은 평지, 불룩 튀어나온 바위 등을 색깔별로 구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료로 라시드는 위험 장소를 피해 안전하게 주행한다. AI로 ‘월면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셈이다. 지구의 내비게이션이 교통 정체와 공사, 사고 구간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것과 비슷하다.

라시드에 탑재된 카메라로 찍은 모의 월면의 모습(위 사진). 이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자 지형 특징마다 다른 색깔이 입혀진다(아래). 황토색은 흙이 깔린 평지, 분홍색은 바위, 보라색은 충돌구 안쪽, 녹색은 충돌구 가장자리를 뜻한다. MCSS 제공

■ 물·자원 채취에도 활용

이 기술은 향후 인간의 첫 우주 정착지가 될 달에서 차량 운행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기가 없고, 중력이 적으며,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큰 달에서 인간은 차량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지형이 거친 달에서 양질의 지형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운행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디가 구덩이고, 평지인지를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구별해 알려줄 것이라는 뜻이다. 차량 전복 같은 ‘교통사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AI는 2020년대 말에 가시화할 달 상주기지 건설 공사 과정에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장기간 쾌적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갖춘 기지를 지으려면 많은 공사차량을 안전하게 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MCSS는 향후 월면의 물이나 광물에서 나오는 특유의 적외선을 감지하는 카메라를 AI와 연계할 예정이다. 가시광선이 아니라 적외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야간 운행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AI가 길잡이 역할을 넘어 자원도 찾는 셈이다. MCSS는 공식 자료를 통해 “지구 궤도를 넘어선 AI를 처음 시연하는 이번 임무는 우주 탐사에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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