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정찰 풍선
지구 대기권과 성층권 사이에 형성되는 제트 기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속도는 시속 300㎞에 이르고 겨울철에 더 빨라진다. 제트 기류는 1926년 일본의 기상학자 오이시 와사부로가 후지산 근처 높은 하늘에서 처음 발견했는데, 일본은 이를 군사용으로 활용했다. 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풍선 폭탄 9300여개를 미국으로 날려보냈다. 자체 기압계와 고도계를 달고 폭탄을 실은 수소 풍선을 고도 9100m 이상 띄우면 제트 기류를 타고 8000㎞ 떨어진 미국 본토에 사나흘이면 도달한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본토에 도달한 풍선은 전체의 3%인 300개 정도였다. 오리건주 산에 추락한 풍선 폭탄을 민간인 6명이 건드렸다가 숨진 것을 제외하면 별반 파괴 효과도 없었다.
실제 군사용 풍선은 대체로 정찰용이었다. 프랑스군이 1794년 플뢰뤼스 전투에서 지상과 밧줄로 연결된 열기구를 활용해 오스트리아군을 정찰한 것이 첫 사례로 꼽힌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에선 북부군이 남부 연합군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기구 부대’를 운영했다. 냉전 시대에도 정찰 풍선은 자주 하늘로 올려보내졌다. 인공위성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지상 가까이에서 목표물을 탐색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다. 그러나 첩보위성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찰 풍선은 퇴장했다.
미 국방부가 4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인근 해역 18~20㎞ 상공에서 중국이 날려보낸 정찰 풍선을 격추했다. 본토 상공에 있을 때부터 풍선을 관측했지만,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기다렸다가 대서양으로 빠져나가자 F-22 스텔스 전투기의 미사일을 쏴 추락시킨 것이다. 이 버스 3대 정도 크기의 풍선이 미·중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중국은 기상관측 목적의 ‘민간용 비행선’이 경로를 이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지난 1일 몬태나주의 핵미사일 기지 인근을 비행하는 등 정찰용으로 규정해 주권과 국제법 위반이라고 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5~6일 예정됐던 방중 일정을 전격 연기했다. 지난해 11월 정상회담 후 대화를 모색하는 듯하던 양국이 다시 맞서고 있다. 첨단 기술 시대에 느닷없이 아날로그적인 풍선을 놓고.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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