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목욕탕 경매…80% 할인해도 안 팔린다[공성윤의 경공술]

공성윤 기자 2023. 2. 5. 19: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타격∙공공요금 인상으로 목욕탕 줄폐업
경매 나와도 매각율 20.7% 불과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목욕시설인 O찜질방. 건물 총면적이 8000㎡가 넘는 7층짜리 대형 건물이다. 헬스장에 워터파크까지 갖추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의 인기 휴식 장소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문은 닫혀 있고 외벽에는 '미수금 및 월급 지급바람 – 입주상인, 직원일동'이란 현수막이 붙었다. 영업 중단으로 상인들의 묶인 보증금은 2억6000여 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돌려받을 길은 요원하다. 지난해 10월 감정가 약 95억원에 경매에 올라온 O찜질방은 3차례 유찰돼 32억원(34%)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이처럼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년여동안 이어진 코로나 국면이 끝을 향해가고 있지만 치솟은 가스와 수도 요금이 또 발목을 잡았다. 목욕탕의 위기는 얼어붙은 경매 시장에 여실히 드러난다. 2월3일 기준 경매에 나온 전국 목욕시설은 총 19곳이다. 이 중 절반 가량인 10곳이 감정가 7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서울 용산구의 한 목욕탕 ⓒ 시사저널 고성준

14억원 목욕탕이 2억원도 안 해…"권리 깨끗한 물건 거의 없어"

경남 창원의 한 집합상가 지하에 위치한 1150㎡ 규모의 목욕탕은 폐업한 뒤 지난해 4월 감정가 14억원에 경매에 나왔다. 하지만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계속 유찰되고 있다. 소유주가 1명뿐이고 압류와 근저당권을 빼면 권리관계가 단순한데도 입찰하려는 사람이 없다. 경매 개시 시점에 쌓인 관리비만 7100만원이란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최저 경매가는 감정가 대비 13%인 1억9000여 만원까지 떨어졌다.

경북 포항의 'D스파휘트니스'는 4층짜리 대형 목욕시설이다. 전체 면적은 3090㎡다. 헬스장과 음식점도 입점해 있다. 지난해부터 휴업에 들어갔는데 결국 다시 문을 열지 못하고 올 초에 경매에 나왔다. 감정가는 48억원. 주변 상가 매각가에 비해 비싸고 유치권과 임차권이 걸려 있어 수차례 유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경매시장에서 팔린 목욕시설(상가)의 평균 매각율은 20.7%에 불과했다. 경매에 5건이 나오면 1건밖에 안 팔렸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평균 매각가율이 50.8%에 그쳐 감정가의 절반에 처분됐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경매에 나오는 목욕시설은 권리관계가 깨끗한 물건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유치권이 신고돼 있거나 내부 임차인들이 전대차를 하는 등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아무나 입찰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목욕탕에 대한 수요도 많지 않고 용도변경을 하려고 해도 철거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목욕탕은 굴뚝이나 대형 보일러 등 고정시설이 많기 때문에 철거비가 수천만원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대형 시설의 경우 1억원이 넘기도 한다.

2022년 12월 전북 전주시 O 찜질방. 작년 10월 경매에 올라왔지만 3차례 유찰돼 지금도 경매가 진행 중이다. ⓒ 네이버 지도 캡처

지난 3년 간 서울에서 문 닫은 목욕탕 240곳

서울시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2020년 3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폐업 신고를 한 목욕탕은 240곳에 달한다. 여기에는 일반 대중목욕탕 외에 찜질방 또는 헬스장을 같이 운영하는 대형 목욕시설도 포함돼 있다. 이제 서울에서 영업 중인 목욕탕은 697곳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영업 신고만 해 놓고 실제 운영하지 않는 곳을 포함하면 문 닫은 목욕탕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욕탕은 운영비 중 수도비와 가스비의 비중이 큰 대표적 업종이다. 이 와중에 지난해 10월부터 가스비가 올라 목욕탕에서 쓰는 영업용 요금이 17.4% 인상됐다. 수도비도 인상이 예고됐다. 서울시는 작년에 이어 올해 톤당 평균 73원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공공요금이 올랐지만 아껴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목욕탕은 손님이 없어도 항상 온기를 유지하고 물을 갈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요금이 사실상 고정비에 가까운 셈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2월2일 발표한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목욕탕업 종사자들의 90.0%가 난방비 인상에 '매우 부담'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편집자주] 무협지를 탐독하신 분들은 '경공술(輕功術)'에 익숙하실 겁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땅이나 물 위를 날아다니는 기술이죠. 그 경지에 오르면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를 공부하는 분들도 이처럼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도 경공술이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의 기술'입니다. 무협지는 그 터득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꼼꼼한 현장 취재로 경공술을 발굴해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