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저출산대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라
지난 1월 중순 나경원 전 의원의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출마를 둘러싼 갈등에서 '저출산대책'이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대다수 국민은 여당 내 권력다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년 총선 공천권을 놓고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출산대책은 모든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시급한 과제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절벽을 넘어 지역소멸이란 말까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노동·교육·연금의 3개 개혁과제 모두 저출산과 직접 연결된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이나 정부, 국민의힘 등에서는 저출산의 심각성에 그리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현재 출산율을 보면, 얼마나 심각한 국가위기 상황인지 잘 알 수 있다. 2022년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9명으로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산아를 의미한다. 2019년 OECD 국가들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61명으로 우리나라의 2배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산부인과, 소아과도 문을 닫고 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통폐합에 이어 많은 대학이 곧 문을 닫게 된다. 노동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연금고갈도 시간문제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2006년부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무려 280조 원을 사용했다. 그러나 5년 임기의 역대 정부는 단기 성과에만 집착, 애먼 곳에 재원을 유용해왔다.
불과 한 달 전, 나경원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다. 저출산문제는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국방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와 의견 조율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4선 의원 출신 정치인 나경원에게는 제법 어울리는 직책였다. 그는 2016년 제20대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맡기도 했다. 저출산대책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이를 바탕으로 차기 대선까지 꿈꿀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나 전 의원에게는 당 대표라는 감투가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며 부위원장직의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대통령으로부터 해임당했다.
앞서 지난달 5일 나 부위원장은 출산 가정에 주택구입·전세자금 대출 원금을 탕감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적 이유로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자녀 수에 따라 원금도 탕감하는 등 과감한 정책 도입의 뜻을 밝혔다. 헝가리에서 효과를 검증받은 제도였다. 도덕적 해이가 야기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정책의 유효기간은 딱 24시간였다. 이튿날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언론브리핑을 갖고 "나 부위원장이 밝힌 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당 대표 출마를 고심하는 나 전 의원에 대한 견제였을까? 아니면 도덕적 해이라는 사회적 비난이 부담스러웠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대통령실 반박은 향후 비슷한 정책의 추진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나 전 의원의 후임으로 김영미 부산 동서대학교 교수가 임용되었다. 동서대학교는 정권 실세로 알려진 장제원 의원의 형이 총장으로 있는 학교다. 45세 젊은 여성 사회복지 전문가의 발탁이었다. 지난해 12월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에 합류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장관급인 부위원장직에 올랐으니 엄청난 관운이다. 하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그가 관련 부처의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조율할 수 있을지 벌써 의문이다. 위원회를 1회만 개최한 문재인 정부처럼 윤석열 정부 역시 저출산대책위를 유명무실하게 운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부는 최근 이민관리청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민관리청 설립은 출산율 급감으로 부족해진 인력을 외국인으로 채우며 다민족사회로 옮겨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근원적 대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저출산문제해결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교육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이들의 걱정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는 정권교체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문 정부로부터 교훈을 그다지 얻지 못한 듯하다. 단언컨대 저출산문제 극복이 없다면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공허한 변죽만 울릴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20~30년 뒤 대한민국의 미래를 정말 생각한다면, 저출산 문제해결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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