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포커스] `행복이음` 먹통 이후… `공공SW사업` 손떼는 기업들

팽동현 2023. 2.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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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공고 11개중 7개 유찰
업계, 예산·수행구조 문제로 꼽아
기업규모 상관없이 상생모색 필요

지난해 일어난 카카오톡 먹통 사태는 우리 일상에 IT(정보기술)가 얼마나 파고들어 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이에 앞서 코로나가 한창일 때 빚어졌던 백신 사전예약 대란은 전자정부 강국이라 자부해왔던 정부와 IT업계에 경종을 울렸다. 우리 일상뿐 아니라 정부 대국민 서비스에서도 IT는 떼려야 뗄 수 없다. IT서비스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책임도 이에 비례해 늘어났다. 하지만 정부가 그에 걸맞은 사업대가를 주고 있는가. 업계에선 '아니오'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5일 IT서비스 업계에 따르면 새해에도 조달청 나라장터에 등록된 공공 시스템 구축·유지보수 사업들의 유찰이 이어지고 있다. 연매출 8000억원 이상 중견기업의 참여가 가능한 80억원 이상 사업 공고 11개 중 7개에서 입찰 참여기업이 없었다.

SW(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도입 후 2010년대 중반까지는 SI(시스템통합)기업들이 대기업 SI가 이탈한 공공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저가수주 출혈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공공SW사업 중 유찰되는 비율이 매년 절반에 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을 게 부족해서다. 또 자칫 잘못 먹으면 큰 탈이 일어난다. 특정 공공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입은 기업이 사업에서 아예 철수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수천억 규모 정보화사업까지 연이은 난항= 지난해 2차 개통 때 먹통 사태를 일으키며 국정감사 도마 위까지 올랐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이음)은 여전히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측은 최근 사업자 측의 사업기간 연장 요청에 퇴짜를 놨고, 검수 결과도 불합격을 통보했다. 수행 과정에서 일었던 잡음과 별개로 코로나 여파에 따른 기간 연장은 감안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기업들은 무보수로 개발작업을 하고 있다.

설 연휴 직후로 예정됐던 우체국 차세대 금융시스템 오픈도 다시 5월을 바라보게 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코로나 확진자 다수 발생 등으로 일부 서비스 개발이 지연된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차세대 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도 개통 일주일 만에 장애를 일으켜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가 참석하는 개통식이 미뤄지기도 했다. 사업비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형 사업들마저 원활한 개통·가동 사례를 보기 힘들어졌다.

일각에서는 현재 IT서비스 기업들의 사업 수행역량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업계의 의견은 다르다. 한 SI기업 대표는 "어느 하나 깔끔하게 끝나는 사업이 없다"면서도 "기업들의 역량 부족을 따지려면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요구사항은 2020년대, 사업대가는 2010년대= 이렇듯 공공SW사업에서 벌어지는 품질 문제는 높은 유찰율과도 관련이 있다. 소위 '갑'인 공공기관의 요구에 맞춰 이윤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수주해 수행하다 보니 품질 문제가 생기고, 이를 우려한 기업들이 사업참여를 주저하면서 유찰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과거 전체 정부 예산에서 비중이 2~3%에 달했던 공공SW사업은 현재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공공부문 수요예보에 따르면 올해 공공SW사업 예산 예정치는 총 4조4545억원으로 전년보다 3.2%(1389억원) 증가했다. 사업 건수는 1만805건으로 4.1%(424건) 늘어났다. 그 중 대부분은 유지보수 사업이라 신규사업 예산은 1조원 이내로 시장이 정체된 상황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인력에 지급되는 FP(기능점수) 단가는 2010년 49만7427원에서 2014년 51만9203원, 2020년 55만3114원으로 두 차례 인상됐을 뿐이다. SW기술자 평균임금은 표본과 응답자에 따라 매년 대가가 변동되고, 기술자의 업무숙련도를 반영하진 못하고 있다. 코로나를 거치며 대폭 상승한 SW개발자 몸값이 반영이 안 된 것은 물론이다.

한 SI업계 종사자는 "발주기관이 사업범위에 맞춰 예산을 신청해도 기재부에서 사업 예산을 10~30%, 많게는 반토막까지 깎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사업발주는 깎인 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채 이뤄진다"면서 "사업 수행 도중에 변경사항이 있어도 그 대가를 추가로 반영하려면 발주 담당자가 감사받을 각오까지 해야 하다 보니 결국 늘어난 비용은 기업 몫이다. 기업이 모두 손해를 뒤집어쓰는 구조"라고 말했다.

◇과업범위 확정이 최우선 과제= IT서비스 업계는 공공SW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로 '열악한 예산'과 '부적절한 사업 수행 구조'를 꼽는다. 이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 없이는 SW산업 발전을 이룰 수도 없고, 공공SW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단기적인 '가성비' 인력 수급에 목을 매고, 그러다보니 사업을 마치고서도 기술이나 노하우를 내재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문제가 쌓이다 보니 대형 사업 장애와 지연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가장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는 것은 과업범위 확정 절차다. 계약서에 추상적인 표현이 담기다 보니 수행 과정에서 해석에 따라 과업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면서 수행 기간과 FP도 덩달아 급증한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가 과업범위심의워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업 발주단계에서 적용되고 있어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업에 대한 분석·설계를 마친 시점에서 과업범위를 확정짓는 기준·절차가 필요하다.

조미리애 VTW 대표는 "계약은 두루뭉술하게 해놓고 이를 근거로 추가적인 개발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행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과업범위가 통제되지 않는 이상 공공SW 품질은 앞으로도 보장되지 못할 것"이라며 "형평성에 맞는 대·중·소기업 동일책임·동일대가 생태계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중·소 갈등 아니라 상생 모색해야= 그동안 공공SW 분야는 상생보단 적자생존의 싸움터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변재일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조문증 경상국립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는 공존을 얘기하지만 실상은 약육강식이었다"라면서 "결국 발주기관의 역량이 사업성공의 핵심이며, 고질적인 문제인 SW 제값받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IT서비스 업계도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기업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기대했던 이익 실현이 안 되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양새인데, 세월이 흘렀음에도 왜 계속 이런 건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함께 모여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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