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모스크 건축 현장에서 돼지고기는 사라져야

한겨레 2023. 2. 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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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현동 이슬람사원 건축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일 낮 12시30분 대구시 북구 대현동 경북대 서문 인근 이슬람사원 공사 현장 앞에서 돼지고기 수육과 소고기국밥 100인분을 준비해 마을잔치를 열었다. 김규현 기자

[세상읽기]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최근 대구 북구 대현동 경북대 서문 인근 이슬람 사원 건립 현장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심란하다. 2020년 이슬람 사원 건축과 함께 시작된 주민들의 반대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사원 건축이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반대 주민들은 판결 이후 사원 건축 현장 인근에 돼지머리나 족발 등을 놓아두더니 급기야 현장 앞에서 돼지고기를 나누어 먹는 파티를 두 차례나 벌였다. 주민들이 사원 건축을 반대할 수 있다.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무슬림 차별주의자로 간단히 규정지을 수는 없다. 적법한 건축이라고 하더라도 공동체 내 관계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이상 건축주도 주민들과의 대화 및 협상에 성실하게 응할 책임을 부담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선을 넘는 순간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거나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사용해 벌인 일련의 행위들은 명백히 선을 넘었다.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 먹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역사 속에서 무슬림들에 대한 박해로 종종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진정하게 개종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먹였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생사의 문제로 전환되었으며, 돼지고기는 무슬림 탄압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한편, 이집트에서 성물을 반출하면서 무슬림 세관원들의 검사를 막기 위해 성물함을 돼지고기로 덮었다는 얘기처럼 기독교 서사에서 돼지고기는 무슬림들을 물리치는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종교적 상징성 때문에 2010년대 중후반부터 유럽 극우단체들은 반이슬람 시위를 할 때 돼지고기를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돼지 사체 투척 및 전시로부터 시작된 행위는 2019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라마단 기간(이슬람교에서 지키는 금식 기간)에 이슬람 사원 앞에서 돼지고기를 굽는 시위를 여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돼지고기 그 자체보다 이를 활용하여 무슬림을 도발하려는 의도가 더 도발적이었다. 돼지고기를 활용한 반이슬람 시위는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고, 무슬림 차별 및 혐오의 대표적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대구 북구 이슬람 사원 건축 현장에서 반대 주민들이 벌이는 행위들은 이러한 사례들과 겹친다.

무슬림들이 돼지고기가 두려워 이슬람 사원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원 앞에서 무슬림 탄압의 상징인 돼지고기를 일부러 전시하거나 요리하여 먹는 대규모 행사를 여는 것은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을 고취시키는 전형적인 행태다. 반대 주민들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으므로 이슬람 사원 건축 현장 앞에서도 당연히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종교 차별이나 이슬람포비아라고 불러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돼지고기를 굽기 전에 이슬람 사원 건축 반대문을 읽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명제를 사실인 양 내세워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들을 이방인으로 내몰고, 이슬람이 대한민국을 침범한다(대한민국 내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장소가 생긴다)는 인상을 남겼다. 차별은 소수자들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대구 북구 이슬람 사원 건축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는 이제 완전히 성격을 달리한다. 단순히 다중 이용 시설물 건축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라고 볼 수 없다. 사원 건축을 막기 위해 돼지고기를 활용하여 노골적이고 반복적으로 무슬림을 적대하는 행위들은 종교의 자유 침해임과 동시에 종교 및 인종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고 평등권을 인정하는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유엔 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집단학살방지협약 등으로, 이 조약들은 우리나라에서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다)에 반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한편, 국가는 기본권 침해 및 종교적·인종적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노력할 법적 의무를 부담한다. 입법 및 행정 조치를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방관자적·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면서 의무를 회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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