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디 음악인의 ‘무급노동’ [한겨레프리즘]

서정민 2023. 2. 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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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픽사베이

서정민 | 문화팀장

요즘 서울 홍대 앞 인디신과 관련해 에스엔에스(SNS)를 뜨겁게 달구는 용어가 하나 있다. ‘카운팅 공연’이다. 짧지 않은 세월 이쪽 바닥에 관심을 가져온 나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카운팅’이라면 숫자를 세는 것일 텐데, 공연에서 대체 무슨 숫자를 어떻게 센다는 걸까?

발단은 싱어송라이터 해파가 지난달 31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는 “최근 공연한 곳 중에 정산을 아직 못 받은 것 같아서 연락했더니, 정산은 완료됐고 내 관객은 한명도 없었단다. 나는 분명 뮤지션 페이가 엔(n)분의 1인 줄 알고 공연했던 것인데, 그날 참 춥고 힘들었는데 무급 노동한 것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이 글은 5일 현재 76만3000여번 읽혔고, 2390여번 리트위트(전파)됐다. 해당 공연장을 성토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여러 팀을 함께 섭외해 기획공연을 할 때 ‘카운팅 정산’을 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관객이 예매하거나 공연장에 입장할 때 ‘어느 팀을 보러 왔냐’고 물은 뒤, 그 결과에 따라 티켓 수익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을수록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단 한명의 응답도 받지 못한 해파에게 한푼도 돌아가지 않은 까닭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정산 방식을 사전에 출연진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파는 “해파 예매 관객이 없었으면 공연 당일에 안 와도 된다고 알려주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뮤지션들 정산했을 때 나에게도 0원 정산되었다고 연락을 주지. 기다리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이런 답변이라니”라고 트위터에 썼다. 그는 애초에 카운팅 공연에는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고 했다. 오는 12일 같은 곳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싱어송라이터 김새녘과 소속사 영기획은 뒤늦게 카운팅 공연임을 알고는 출연을 취소했다.

미리 알리지 않은 건 명백한 잘못이지만, 공연장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각기 티켓 파워도 다르고 스스로 공연 홍보에 들이는 노력 정도도 다른데, 무조건 수익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같은 비율로 수익을 나눠야 한다면, 인지도 높고 더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팀들끼리만 공연하게 될 테고, 그렇지 않은 팀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또한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어느 한쪽을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결국은 상생의 문제다. 1990년대 중반 태동한 인디신은 부흥기를 지나 지금은 많이 위축된 상황이다. 글로벌로 뻗어가는 케이(K)팝의 위세와 대조적이다. 인디 음악 팬들은 계속 줄고, 라이브 클럽들은 치솟는 임대료에 존폐를 걱정한다. 인디 음악인들 간에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던 동료·연대의식은 옅어져가고, 이 판도 각자도생 분위기가 지배하는 모양새다. 오죽하면 카운팅 공연이란 고육책까지 나왔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공연장 벨로주를 운영하는 박정용씨는 페이스북에서 “지금 카운팅 정산 방식이라는 클럽 공연 페이 이슈가 너무 한쪽을 상처 주는 방식으로 논의되는 느낌”이라며 “이는 결국 시장의 크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고,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에스엔에스를 통해 사람들 생각을 나누고 또 새롭게 모아서 음악가들과 관객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기획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많은 이들이 수긍할 만한 ‘솔로몬의 지혜’가 없진 않을 테다. 예컨대 팀별 관객 수대로 정산하더라도 각자 조금씩 양보해 최소한의 출연료를 보장해 주는 방식도 고민해봄 직하다. 이런 합동 공연의 큰 장점은 관객이 좋아하는 팀을 보러 갔다가 몰랐던 팀을 발견하고 취향을 넓힐 수 있다는 데 있다. 중요한 건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이를 더 넓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그들은 결국 답을 찾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비난보다 응원이 필요한 때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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