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마포르네상스’를 꿈꾸며

한겨레 2023. 2. 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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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마포르네상스를 꿈꾸며’는 무슨 아파트 광고문구도 아니고, 미술학원 홍보 문구도 아니다. 2023년 ‘경록절’이라는 페스티벌의 부제이다. ‘경록절’이란 무엇인가? 정말 낯 간지럽고 아직도 어색하지만 나의 생일파티에 친구들이 농담삼아 내 이름 ‘한경록’에서 따와 ‘경록절’이라고 이름 붙여 준 것이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친구들과 록밴드 ‘크라잉넛’을 결성해서 1995년부터 홍대에 위치한 ‘드럭’이라는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28년 동안 공연을 해오고 있다. 친구들과 붙어있던 시간은 가족들과 같이 있었던 시간보다 훨씬 길고, 홍대에서 지내온 시간은 태어나서 자란 시간보다 길다. 크라잉넛 친구들은 정말 가족 같고 홍대는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

‘라떼는 말이야!’처럼 들릴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90년대의 홍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그 당시에는 지하철 상수역도 없었다. 우리가 공연을 한 라이브 클럽 ‘드럭’이라는 곳은 홍대입구역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공연장이었다. 기억하기로 보통 서교동까지를 홍대라고 했는데, ‘드럭’은 서교동의 경계선 밖인 상수동에 위치 했다. 그 당시엔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왜냐하면 2인 이상이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 유흥업소로 등록해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세금이 엄청나게 비싸지기 때문이다. 공연 입장료 3천 원 받고 밴드 출연료까지 챙겨가며 운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비싼 세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홍대 라이브 클럽들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하고 공연을 해야 했다. 공연장은 음악으로 흥겹고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을 위로하고 재충전하는 장소인데, 이것이 왜 불법인지 그 당시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공연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가끔씩 민원이 들어올 때면 상수동과 서교동 파출소 두 곳에서 경찰이 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는 그저 음악만 했을 뿐인데. 그 당시 우리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홍대의 라이브 클럽들이 연대하여 ‘라이브 클럽 합법화’를 이뤄냈다. 그렇게 이제는 당당하게 무대에서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홍대에는 예술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10월이면 홍대 미대생들이 홍대 주민 및 상인들과 합의 하에 건물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거리 미술전’이 열렸다. 그 당시는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회색 도시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고 향수처럼 음악을 뿌렸다. 그때는 좀 더 낭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오고 관광객들이 몰려와 유흥과 소비만 하고 끝나지 않았다고 기억된다. 관광객 유치와 대기업들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도치 않게 홍대의 집값은 고공행진을 하며 올라가고, 가난한 예술가들과 라이브 클럽들은 더욱더 월세가 싼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러면 변방에는 또 예술적인 향기가 묻어 집값은 또 올라가 버리고 예술가들은 또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간다. 그렇게 서교동에서 시작한 홍대는 마포구 전체로 확장되어 간다. 이런 순환의 연결고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이 되었다.

예술과 낭만이 넘치던 홍대에 불법 유흥업소 전단지들이 지저분하게 거리에 날리면 가끔씩 서글퍼진다. 다시 한번 홍대가 예전의 낭만과 예술의 거리가 될 수는 없을까?

홍대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나의 생일 ‘경록절’에는 항상 뮤지션과 예술가 동료들이 많이 모인다. 그리고 얘기한다. 옛날 홍대가 그립다고.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그 기억을 다시 한번 재현해 보고 싶다. ‘경록절’ 기간만이라도. 흑사병이 돌고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처럼, 홍대거리에도 예술과 낭만이 부활하길 바란다. 이것이 규모가 확장된 홍대, ‘마포르네상스’라고 경록절에 부제를 붙인 이유이다.

이번 ‘2023 경록절 마포르네상스’는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문학, 과학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담아 장장 5일 동안 펼쳐진다. 홍대 라이브 클럽 여러 곳에서 공연도 진행되고,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비롯해 미술전시회, 과학강연, 북토크 등도 열린다. 특정 마니아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 지역주민, ‘외로운 기러기 갈매기 모기 토끼 소년소녀들’ 모두에게 열려있는 페스티벌이다.

음악과 예술이 많은 사람에게 치유와 회복, 그리고 추억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며 나는 ‘마포르네상스’를 꿈꾼다. 끝으로 예능뿐만 아니라 예술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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