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도시 [서울 말고]

한겨레 2023. 2. 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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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지난해 11월29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서한나 | <사랑의 은어> 저자

최근의 사건사고를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곳이 살기에 좋지 않은 곳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혁명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같이 있으면 더 어렵다… 조직에서 나는 땅으로 꺼지기나 하늘로 솟기 말고 다른 것을 꿈꿀 수 없게 되며, 커피나 낮잠 외에는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데올로기는 낡은 단어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머리가 깨지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은 일순간 생겨난다. 그 상태는 오래가지 않겠지만, 이데올로기는 문화와 자아, 패션 따위에 올라타 여전히 삶을 이끈다. 그 존재를 느끼게 하는 거리에 사는 것은 어지러운 축복이다. 도서관을 걷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고 휴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인생은 영화처럼 피곤해질 것이다.

2022년 10월,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앞을 지나던 행인은 “저항하라 휴식하라”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본다. “트리샤 허시가 주장하는 저항으로써의 휴식 개념을 참고해 작업한 ‘오늘의 풍경’ 신인아 디자이너의 작업”인 것을 알든 모르든, 그것을 본다.

놀라운 이미지를 보고 놀라거나 놀라지 않는 것은 그의 소관이지만, 적어도 그는 만나게 된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벽보를 통해 어떤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인지 볼 수 있다. 이름을 검색해 그의 말과 몸짓을 구경할 수도 있다. 보여주는 도시는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한다. 보는 것, 내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집 근처에서 연구자 모임을 한다기에 가보았다. 진지하게 궁리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면 기분이 달라진다. 한 사람이 말했다. “어떤 혁명도 불가능하다는 거 우린 알잖아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 “모든 게 불가능한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속에서 사는 거니까요.” 그런 이야기가 동네에서 오고가는 게 좋았다.

사물놀이패 선배가 좋아 그만 마르크스를 배웠다는 사람이나 어쨌든 “꿘(운동권)”은 싫다는 이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사회갈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신세대에 묻는 일은 시트콤 소재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추억에 사는 사람이든 덮어놓고 싫다는 쪽이든 영양가 없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탈정치화는 젊은이를 비난하는 도구가 되어왔다. 오늘날의 도시는 정치적인 경험과 예리한 사고를 갖기에 적절하지 않은 데다, 대부분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다. 저열한 도시에서 선량한 시민되기는 지상 최대의 과제다.

몇 사람을 제외하면, 정치인들은 태도로 보나 본새로 보나 정치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 현실은 단순히 뉴스 보기가 싫다는 생각을 넘어, 어떤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빼앗고, 누구도 무언가에 도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지방선거 무렵 이 지역의 얼굴을 찾겠다고 나선 정치인을 만날 일이 있었다. 기자회견에 기자가 온 적이 몇 번 없는 도시이긴 해도, 나는 그가 한때 무언가를 염원했던 자이기를 바라면서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정치는 직업이며, 토론은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대전 시민이 구경하는 정치란 헬스장 현수막 옆에 더 할인하는 헬스장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정도다.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죽거나 다치며, 애호박은 삼천 원이 되는 와중에 우리는 점점 불우해진다. 국민청원에 무엇까지 호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정치적인 충격을 만들어내고 변화를 촉구하는 장소는 광화문 또는 사건이 발생한 곳일 텐데, 사건 이전에 정치적인 도시가 오면 좋을 것이다.

지리산에 모여 사는 지식인 마을 외에는 지적 감흥과 정신의 일렁임, 원초적인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몇 곳 없고, 애초에 그걸 원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 보인다.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없는 것은,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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