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기억을 지우는 서울시

유경선 기자 2023. 2. 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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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100일을 맞은 5일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전날 서울광장에 설치한 희생자합동분향소 인근에서 경찰들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서울시는 유족측에 6일 오후 1시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을 시 행정대집행에 들어갈 것이라 통보했다./서성일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지난 4일 서울광장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한 것과 관련해 서울시가 “자진 철거하라”며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그러나 유족과 시민단체 측은 자진 철거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향후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가 열린 전날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한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측에 “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라”는 내용의 계고장을 보냈다고 5일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4일 오후 7시30분쯤 가서 계고장을 전달했다”며 “최대한 자진 철거를 유도하되 그대로 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검토한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향소 운영이 장기화되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당초 참사 발생 근처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분향소를 설치하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유가족들은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추모할 수 있도록 광화문광장 옆 세종로공원에 분향소 설치를 원했지만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않자 5일 서울광장에 차렸다.

유가족들은 6일 오후 1시 분향소를 계속 운영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열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에 대해서도 광화문광장 사용을 불허하는 등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일련의 행사들에 대해 거듭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서울시가 이태원 참사 발생에 직접 책임을 지는 지자체로서, 이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분향소 설치 당일 행정집행 계고장을 보낸 것은 결국 윤석열 정부 코드 맞추기와 책임 회피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날 가족들과 분향소를 찾은 박모씨(45)는 “서울광장 관련 규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상징성이 있는 곳에 분향소를 차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조카 송모씨(21)를 잃은 유가족 남윤호씨(46)는 “녹사평역에서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마음이 좋았다”라며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차린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서울시가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과 이해를 해주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100일을 맞은 5일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전날 서울광장에 설치한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에 대한 서울시의 불허와 강제 철거 움직임은 세월호 기억공간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과도 닮았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당초 2019년 4월 광화문광장에 설치됐으나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이유로 2021년 11월 서울시의회 앞에 임시 이전됐다.

광화문광장은 지난해 8월 재개장했지만 세월호 기억공간은 원래 있었던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지난해 6월부로 임시공간 운영 기간이 지났다며 단전·단수를 통보하는 등 사실상 철거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에 4·16연대는 지난달 11일부터 ‘세월호 기억공간 지키기’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때 참사에 공감한다며 유가족이 필요한 것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유가족 요구와 동떨어진 제안을 거듭하고, 이를 우리가 거부하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며 “오히려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시민들 갈라치기’를 서울시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100일을 맞은 5일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전날 서울광장에 설치한 분향소에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여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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