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동원은 과잉대응" 발끈한 中…G2 고위급 대화 올스톱

손일선 특파원(isson@mk.co.kr), 최현재 기자(aporia12@mk.co.kr) 2023. 2. 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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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본토 정보수집 했을 것"
F-22 띄워 中풍선 격추
中, 민간 연구용 해명했지만
블링컨, 방중 일정 전격 연기
"건설적 방문 여건 좋지않다"

중국 정찰 풍선 사태가 미·중 관계에 새로운 파열음을 내고 있다. 미국은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질 예정이던 국무장관의 방중을 취소한 데 이어 자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시키는 '강수'를 뒀다. 중국이 '과잉 대응'이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지난해 정상회담 이후 후속 대화를 통해 긴장 완화를 모색하던 미·중 관계가 다시 살얼음판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4일(현지시간) CNN·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F-22 전투기의 AIM-9 공대공 열추적 미사일 발사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도시 머틀비치 연안 인근에서 비행 중이던 중국의 정찰 풍선이 바다로 추락했다. 이날 격추 작전에는 매사추세츠주 주방위군 소속 F-15 전투기와 오리건주·몬태나주 등 5개주에서 출격한 공중 급유기 등 다수의 군용기가 동원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풍선이 격추된 직후 메릴랜드주 해거스타운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수요일(2월 1일) 브리핑을 받을 때 국방부에 가능한 한 빨리 격추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미 당국은 지난달 28일 알래스카주 상공에 진입한 중국 정찰 풍선을 처음으로 포착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정찰 풍선이 캐나다 영공을 거쳐 미국 아이다호주 영공으로 재진입하자 본격적으로 비상이 걸렸다. 다음날인 이달 1일 정찰 풍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용하는 말스트롬 공군기지가 있는 몬태나주 상공에 도달하자 미국 정부는 격추 결정을 내렸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5일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을 통해 "중국은 비행선이 민간용이고 불가항력적으로 미국에 진입했으며 완전히 의외의 상황임을 이미 여러 차례 미국에 알렸다"며 "미국이 무력을 사용해 민간 무인 비행선을 공격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 국방부 대변인도 이 풍선이 지상 인원에게 군사적이나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 과잉 반응을 보인 것은 국제관례를 엄중히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미국이 강경 대응한 이유는 중국 정찰 풍선이 자국의 민감한 군사시설 등을 감시하는 데 활용됐다고 보고 있어서다. 피터 레이턴 호주 그리피스 아시아 연구소 연구원은 CNN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정찰 풍선은 미국의 통신 시스템과 레이더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달 5~6일 예정됐던 방중 일정을 전격 연기하면서 이 같은 점을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3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이것(풍선)이 중국의 정찰 풍선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며 "지금은 건설적 방문을 위한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가 같은 날 미 영공을 침범한 기구를 '정찰용'이 아닌 '민간의 기상 연구용'이라고 해명한 데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번 '정찰 풍선' 사태로 인해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미·중 관계가 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풍선이 미국 본토 상공에 등장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미·중 양국은 대화를 유지해가며 표면적으로 관계 개선을 추진해왔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의 열린 소통 라인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경제팀 수장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회동하고 양국 경제 현안을 논의한 것도 이런 연장선이다.

특히 경제와 민생 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은 최근 미국에 대해 과거보다 한층 유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전랑(늑대전사) 외교의 대명사로 불리는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춘제 연휴 기간 미국 프로농구(NBA) 경기장 스크린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미국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정찰 풍선 사태를 계기로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취소되면서 대화 분위기에 다시 제동이 걸렸고 양국 간 신뢰에도 큰 상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찰 풍선의 성격과 영공 침범 원인을 둘러싼 미·중 간 치열한 공방전도 예상된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은 비행체가 의도치 않게 미국에 들어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비행체의 정체를 둘러싼 미·중 간 진실 공방이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측 모두 상황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것은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제 회생에 전념하고 있는 중국은 대외관계 핵심인 미국과의 충돌을 원만하게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이 "상황 악화와 오판을 피하기 위해 양국이 계속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의 고위 당국자도 "외교가 우리의 가장 복잡한 양자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여건이 허용되는 대로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베이징 손일선 특파원 / 서울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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