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국민연금을 정책수단 삼지 말자

2023. 2. 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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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기업 주인이 있든 없든
경영 개입은 연금사회주의
'좋은 지배구조'가 따로 있나
지금 할일은 연금의 '탈정치화'

연초만 되면 국민연금이 뉴스를 장식한다. 지난 정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뒤 기업들의 3월 주주총회에 앞서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변함없다. KT 대표의 연임에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윤석열 대통령도 스튜어드십을 언급해 관심을 집중시킨다.

윤 대통령은 1월 말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주인이 있는 기업의 경우 스튜어드십이 과도하게 작동되면 연금사회주의가 되는 부분도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렇지만 (은행이나 KT와 같이)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된다는 점에서 (스튜어드십 행사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난 정부의 '대기업 장악용' 스튜어드십 코드와는 결이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관련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국민연금을 손쉬운 정책 수단으로 삼으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첫째, 윤 대통령은 주인 있는 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개입은 연금사회주의지만,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개입은 연금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하면 그 대상이 누구건 연금사회주의다.

서양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자율규제'라는 형식으로 도입됐다. '불순한 의도'는 있지만 민간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투자 기업을 관리하겠다는 것에 대해 정부가 좌지우지할 여지는 별로 없다. 투자자들 간에 생각이 많이 달라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은 연금사회주의에 정확히 부합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 개혁을 통한 '공정 경제' 달성이라는 사회주의적 정책 수단으로 밀어붙였다. 국민연금이 주요 대기업의 집합적 최대주주라서 그 정책을 강력히 집행할 수 있는 기반도 갖췄다. 주인 있는 기업은 빼고 소유분산기업에만 적용한다고 연금사회주의 기본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둘째, 윤 대통령은 '좋은 지배구조'를 갖추면 기업 경영도 잘되고 잡음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지배구조는 없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금융그룹 ING는 '경영인 독재'라고 할 수 있다. 투표권 딸린 주식의 100%를 경영진이 통제하는 트러스트(Administratie Kantoor)가 소유한다. 외부 투자자들은 무투표 주식만 살 수 있다. 경영진을 통제하는 지배구조가 아예 없다. 그렇지만 경영이 잘되고 투자자들이 지분을 행복하게 보유한다. 지배구조는 실제로 대단히 다양하다. 좋은 지배구조가 좋은 경영 성과를 가져온다기보다,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좋은 지배구조라고 얘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무원칙한 개입을 늘리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지배구조라는 사안에 개입할 자격조차 없다. '대체투자'라는 이름으로 사모펀드나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는데, 이것은 지배구조에 관해 '묻지 마' 투자이다. 그런데 어떻게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개입하나?

국민연금은 정부 소유가 아니다. 연금 가입자들의 노후 대비용 자산이다. 정부는 연금공단이 관리를 잘하도록 감독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과거에 정부는 주식시장이 흔들리기만 하면 연기금을 '시장 안정'에 동원했다. 이 관행을 없애고 국민연금을 정상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국민연금을 연금사회주의라는 비정상으로 다시 몰아넣었다.

국민연금에 대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연금사회주의 관성을 되돌리고 '탈(脫)정치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노후자산 관리라는 본연의 임무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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