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서 20년 인연 작가 5인과 새 출발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2. 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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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갤러리 재개관전
옛 공간사옥 옆 신축 건물에
권오상 사진조각 신작부터
안지산 고라니 사냥 그림
노상호 AI 작업 등 눈길끌어
아라리오 서울 5층에 설치된 권오상의 사진 조각. 【사진 제공=아라리오】

근대건축의 걸작인 김수근의 옛 공간사옥 옆에 쌍둥이처럼 닮은 회백색 벽돌로 쌓은 좁고 길쭉한 건물이 들어섰다. 스키마타 건축의 대표이자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인 조 나가사카가 설계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새 보금자리다. 담쟁이가 둘러싼 고풍스러운 옛 건물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이 전시 공간은 창경궁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백점짜리 조망까지 품었다.

소격동에서 문을 닫은 지 1년여 만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원서동으로 이전해 1일 문을 열었다. 3월 18일까지 열리는 재개관전에는 전속작가 5인을 초대했다.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정립한 '낭만적 아이러니'를 제목으로 삼아 전속작가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가 참여했다. 강소정 디렉터는 "아라리오와 20년 이상 오랫동안 함께한 작가들의 신작을 모았다. 반전과 트릭이 빛나는 작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하 1층은 폭설이 내린 산중턱의 사냥터 같다. 안지산의 '고라니 사냥' 시리즈는 얼굴을 숨긴 늙은 사냥꾼의 고라니와의 사투를 통해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인간의 불안감을 표현했다. '때를 기다리는 사냥꾼 김씨'에선 사냥 직전의 긴장이 팽팽하게 묻어난다. 독일 낭만주의의 향수가 짙은 작업이다.

1층의 김인배 작가는 벽에 직접 적어 둔 '3개의 안개'를 주제로 전시를 꾸몄다. 나무 합판을 파주시의 지도 모양으로 잘라 5.6m 높이 기둥처럼 쌓았다. 북한과 인접해 행정구역과 선거구역이 매번 바뀌는 유동적이고 경계가 없는 도시를 통해 안개의 특성을 표현했다. 프로펠러 날개를 이중으로 쌓은 '날개', 분필의 재료로 칠판을, 칠판의 재료로 분필을 만든 '칠판과 분필' 등을 선보인다. 작가는 "안개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2층의 이동욱 작가는 건축 재료인 허니콤과 피부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인공물질로 벌거벗은 인물상이 거친 구조물에 고립된 '미끄럼틀' '절벽' 등 5점을 선보였다. 이 작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금속이 연약한 인간의 속살과 결합할 때 연약함을 강조하는 구성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벌집 같은 허니콤 속에 진짜 벌처럼 감쪽같이 만든 가짜 벌도 숨어있다. 3층의 노상호 작가는 인공지능(AI)과 협업한 독특한 작업을 걸었다. 해골 가면을 쓴 남자가 날개가 달리고 머리가 두 개인 말을 타고 있다. 이 밖에도 머리가 두 개 달린 말과 사슴, 새끼와 한 몸이 된 곰, 토끼 귀를 한 개 등은 AI 도구의 오류로 생성된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AI를 조수로 삼아 화폭에 상상력을 더했다. 그는 "인스타그램 등에서 수집한 디지털 이미지와 AI 이미지 등을 조합해 매일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 디지털 세계의 이미지가 제 몸을 통해 아날로그로 그려지는 과정을 '홀리'라는 제목처럼 성스럽다는 감각으로 표현해봤다"고 설명했다. 출구에 걸린 수백 개의 AI 이미지와 인물이 난장처럼 어우러진 대작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삼면화를 연상시킨다.

VIP룸으로 쓰일 예정으로 개관전에서만 개방된 5층에는 권오상의 '사진조각'이 설치됐다.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1950년대 추상조각을 오마주한 작품을 선보인다. 인체의 부분을 추상화한 듯한 조각 속에 만화 '원피스' 문신을 한 일본 야쿠자, 모델 지지 하디드, 가수 '잔나비'의 최정훈의 얼굴 등을 숨겨놓았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가는 길에는 거대한 사진 조각이 눈길을 다시 붙잡는다. 권오상이 10여 년 전 친구를 모델로 만든 조각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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