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단 상관없이 흐르는 임진강처럼...경계없는 자연을 상기하라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2. 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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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서 환경운동 주목

세계적 건축가·작가 마야 린

페이스갤러리 서울 개인전

마야 린 개인전 전경 <사진제공=페이스갤러리>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방한한 미국 건축가 겸 작가 마야 린 <이한나 기자>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임진강과 한강의 물줄기가 정치적 분단과 상관없이 흘러간다. 멀리서 보면 섬세한 드로잉(소묘) 같지만, 가까이 가보면 촘촘히 박힌 핀들의 행렬에서 어떤 율동감이 느껴진다.

미국 오하이오주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부터 물에 매료됐다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겸 작가 마야 린(64)이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 ‘마야 린: 자연은 경계를 모른다’를 열고 있다. 국내 첫 개인전에 맞춰 처음 방한한 그는 신작 ‘Pin Gang-Imjin and Han’(2022)와 ‘Marble Han River Dam’(2022)을 선보였다. 전자는 하얀 판에 핀으로, 후자는 재활용한 구슬로 충주호 주변 물줄기를 되살려낸 입체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이 그은 정치적 경계선과 상관없이 물은 흐르고 자연은 살아있다”며 “인공위성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되, 남북 분단 이전 옛날 지도도 참조하며 만들었다”고 전했다. DMZ(비무장지대)가 오랫동안 인간의 접촉이 없어 생물보존지로 남게 된 점도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기체, 액체, 고체로 형태를 바꾸는 물의 조각적 특성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시각화해온 경험을 새로운 연작에도 살려냈다.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을 재활용 은으로 벽에 구현한 조각 ’Silver Tigris & Euphrates Watershed’(2022)는 우아하다. 이와 비슷한 작품 ‘Where the Land Meets the Sea’(2008)가 캘리포니아과학아카데미 천정에 걸려있다.

Maya Lin, Silver Tigris & Euphrates Watershed (2022) <사진제공=페이스갤러리>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에 설치된 마야 린의 ‘Where the land meets the sea’(2008) <사진제공=마야린 스튜디오>
마야 린은 미국 워싱턴DC의 ‘베트남 참전용사비’(1982)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축가이자,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크리스탈 어워드를 수상한 환경운동가 겸 예술가다. 정확한 정보를 시각화함으로써 대량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에 주목하고 생물다양성을 복원하게끔 환기하는 캠페인 프로젝트 ‘무엇이 실종되었는가? (What’s missing?)’의 업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반전운동과 여성과 원주민의 권리 등 미국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는 기념비 작업에 특화한 그는 “이 프로젝트야 말로 나의 마지막 기념비 작업이 될 것”이라며 “다른 수익을 모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건축과 미술, 기념비는 일종의 삼각대처럼 내 인생의 핵심 축”이라며 “건축이 소설, 미술이 시와 같다면, 기념비 작업은 둘의 혼합(hybrid)이다. 기능성도 있지만 상징과 개념에 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 DC에 세워진 마야 린의 ‘베트남 참전용사비’(1982) <사진제공=마야린스튜디오>
예술만큼이나 과학과 수학을 좋아해서 건축을 전공으로 택했다는 그는 예일대 학생이던 21세 때, 넓은 공원에 거대한 상처를 연상시키는, 화강암 기념비를 세우고 베트남전에서 죽거나 실종된 5만8000여명의 이름을 새겨넣는 제안으로 세기의 공모전에 당선됐다. 전통적 형상이 아닌데다 수직으로 높게 치솟은, 인근의 워싱턴 기념탑과 대조돼 당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작가는 “상실의 첫 고통은 살을 베는 것과 같고 상처가 흉터로 남게 된다고 생각했다”며 “거대한 형태로 압도하기보다는 땅을 갈라서 올려놓는 방식으로 풍경 안에 통합되는 기념비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마야 린의 대지예술 ‘Storm King Wavefield’ (2009) <사진제공=마야린스튜디오>
작가는 이후 다양한 기념비 프로젝트를 의뢰받았고, 본인 의지로 넓은 대지에 물결 무늬 형상을 구축한 ‘대지예술’ 연작도 펼쳤다. 흥미롭게도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는 미술계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화강암 기념비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가 패배한 경기 전적을 새겨넣는 방식으로 마야 린의 기념비를 살짝 비튼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전시 일정이 겹쳐서 한남동 카페에서 동네 친구처럼 만났다는 후문이다.

다만 마야 린의 40년 대표작 위주로 담기에는 좁은 전시장 탓에 작품들이 건축물 미니어처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쉽다.

전시는 3월 11일까지.

마야 린 개인전 전경 <사진제공=페이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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