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치명률 50%인데…조류 인플루엔자, 포유류 감염 확산
밍크 등 포유류 감염 사례도 119건
새 변이로 종간 전파 위험 커진 듯
치명률 높아 사람 감염 대책 필요
전 세계에 조류 인플루엔자의 포유류 감염 확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비비시’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5N1) 발생 규모가 사상 최대를 향해 치닫고 있으며 포유류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포유류 감염은 그만큼 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하며 인간에게 더 가까이 왔다는 걸 뜻한다.
이 바이러스는 병원성이 강해 감염될 경우 조류는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며, 사람의 경우도 치명률이 50%가 넘는다. 계절성 독감의 치명률 0.1%나, 신종플루의 치명률 1%보다 월등히 높다.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은 2021년 10월 시작돼 바다새와 가금류, 야생 조류를 통해 미국과 유럽을 포함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 따르면 지난 15개월 동안 전 세계 79개국에서 4200만마리의 가금류와 야생조류가 감염됐으며, 가금류 1500만마리가 죽고 1억9300만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보건기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야생 조류가 희생됐으며 특히 바다새가 큰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도둑갈매기의 40% 이상이, 그리스에서는 펠리칸 수천마리가 감염되는 등 약 80종의 조류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았다.
밍크 집단감염 주목…인간 전파 매개 가능성
보건 당국이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포유동물로의 전파다.
이미 영국 여우와 수달, 돌고래, 미국 회색곰, 스페인 밍크, 카스피해 물개 등 다양한 종의 포유류에서 119건의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9마리의 수달과 여우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조류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영국 보건당국은 보고 있다.
보건 당국은 특히 스페인 밍크 농장에서의 집단 발병에 주목한다. 최근 유럽의 감염병 전문저널 ‘유로서베일런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페인 밍크 농장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집단감염이 일어나 밍크 5만마리가 죽거나 살처분됐다. 연구진은 이는 밍크들 사이에서 감염이 계속 이뤄졌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바이러스가 포유류 간 확산을 쉽게 하는 적어도 하나의 돌연변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스페인 연구진은 “지금까지 감염된 유럽의 조류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와는 다른 돌연변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밍크는 조류 및 사람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 모두에 감염되기 쉽기 때문에 조류, 포유류, 인간 사이의 종간 전염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중국 연구진은 2021년 국제학술지 ‘신흥 미생물 및 감염’(Emerging Microbes & Infections)에 밍크의 상기도가 인간에게 전파되는 도관 역할을 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국에선 1월18일 현재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사례가 가금농장에서 63건, 야생조류에서 139건 있었을 뿐 포유류 감염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20년간 사람도 870명 감염…치명률 50% 넘어
조류 인플루엔자는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20여년 동안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은 21개국 870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457명이 숨졌다. 치명률이 50%를 웃돈다.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이 시작된 2021년 10월 이후에도 영국 1건, 중국 1건, 에콰도르 1건을 포함해 모두 6건의 인간 감염 사례가 파악됐다.
보건기구는 현재로선 이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전파될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포유동물 간에 전염되기 시작하면 인간에 대한 전파력도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영국 퍼브라이트연구소의 무니르 이크발 교수는 과학전문매체 ‘뉴사이언티스트’에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포유류 종에 적응하게 된다면 사람의 감염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면 고열, 근육통, 두통, 기침 또는 숨가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감염된 조류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위험군이다.
포유류 감염 확산으로 사람 전파 위험도 높아져
조류 인플루엔자는 100년 전 처음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가을에 전염이 확산되기 시작해 다음해 봄과 여름이 되면 사라진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철새들이 주된 전파 매개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RNA 바이러스다. 두개의 가닥이 결합돼 있는 DNA가 아닌 단일 가닥의 RNA 유전물질을 지질 껍데기가 감싸고, 그 표면에 세포 침투 도구로 사용하는 단백질이 박혀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중가닥이 아닌 단일 가닥이어서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바이러스 표면에는 세포 감염 도구로 쓰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다아제(NA) 단백질이 있다. 세포에 침투할 때는 헤마글루티닌을, 증식 후 세포에서 빠져 나올 때는 뉴라미니다아제를 도구로 쓴다.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에는 18개의 헤마글루티닌 아형과 11개의 뉴라미니다아제 아형이 있다.
현재 유행하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H5N1이다. HA5과 NA1이 결합돼 있다는 뜻이다.
H5N1형 조류 인플루엔자는 1996년 중국의 한 거위 농장에서 처음 발생한 뒤 다음해 홍콩에서 크게 퍼져 사람까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국제적인 공포의 대상이 됐다. 2005년 철새에서도 이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20년엔 새로운 변이(2.3.4.4b)가 출현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유럽과 북미의 가금류 농장이 큰 피해를 입히고 2022년 가을엔 중남미에도 상륙했다.
미 세인트주드아동연구병원의 리처드 웨비 연구원은 ‘사이언스’에 “지금 유행 중인 새 변이 바이러스는 이전의 어떤 변이보다 모든 종류의 조류에 더 잘 적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조류의 상기도 부위에 있는 세포 수용체에 주로 달라붙는다. 포유류에는 이 수용체가 흔치 않아 포유류는 잘 감염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포유류의 잇단 감염 사례를 보면 새 변이 바이러스는 조류 뿐 아니라 포유류 감염 능력도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독일 프리드리히-뢰플러연구소의 토마스 메텐라이터 박사는 “새 변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감염될 경우 이전 바이러스보다 병원성이 덜하다는 몇가지 징후가 있다”며 “그러나 이는 오히려 바이러스가 더 쉽게 퍼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소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제이넵 투펙치는 3일 의견란을 통해 “오랫동안 가금류 사이에서 발생하던 바이러스가 더 많은 철새와 더 많은 동물, 특히 여러 포유동물을 감염시킴에 따라 새 변이가 사람 사이에 확산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전 세계 보건당국은 H5N1 바이러스가 팬데믹이 될 기회를 잡기 전에 밍크 농장 폐쇄나 백신 개발 및 생산 등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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