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핏빛 면도날을 든 이발사 《스위니 토드》
‘잔혹’한 소재로 인간의 내재적 폭력성 끄집어내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지난 연말 시청자들에게 공개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복수극이다. 유년 시절 동급생들로부터 받은 학교폭력과 육체적인 학대로 인해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이 17년의 긴 시간 동안 인생을 걸고 치밀하게 준비해온 처절한 복수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인 피해자의 편에서 조력하는 강현남(염혜란)과의 연대 과정이 흥미롭다. 두 여성의 합동 복수 작전에 흥미가 배가돼 시청자들은 완벽한 복수라는 해피엔딩을 기원하게 된다.
대중에게 복수극은 인기가 높은 장르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정의로운 공동체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죄 없는 주인공이 가해자로부터 당한 고초에 쉽게 몰입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스스로 입을 다물고 망각의 늪에 빠지는 대신 복수의 칼날을 갈고닦아 가해자에게 역으로 타격을 입히려는 행동에 자연스러운 개연성이 보장된다. 때로는 복수를 넘어 수위가 잔혹하게 전개되는 경우도 많은데, 피해자에 깊이 감정이입한 대중은 오히려 피비린내 나는 '과도한 복수극'을 응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대중은 왜 복수극에 열광할까
복수극의 주인공이 극단적인 피해를 당하면서도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어떤 분야에서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면 자신도 가해자가 될 위험이 있음을 알고 양심에 따른 딜레마에 빠져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용서해 주는 결말이 많다.
하지만 피해자가 제대로 된 조력자도 없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을 때 그 복수의 방향이 특정 가해자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제도와 계급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같이 과도한 복수극의 진행은 대부분 '묻지마 연쇄 살인'이 되고 피해자는 또 다른 가해자가 돼 결국 그 자신도 상응하는 벌을 받으며 끝나는 경우가 있다. 《더 글로리》는 이른바 '쪼개기 편성'으로 인해 현재 1부(8부작)만 방영된 상태로 주인공의 본격적인 복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 가해자에 대한 화해와 용서의 길을 선택할지 아니면 피해자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길을 걸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뮤지컬에서도 복수극은 인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복수극으로 《몬테크리스토》 《프랑켄슈타인》 《스위니 토드》 등 세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중 현재 공연 중인 작품은 《스위니 토드》가 유일하다. 국내에서 2009년에 라이선스 초연을 갖고 여러 차례 재공연이 이루어졌는데 3년 만에 다시 시즌 공연을 맞이하고 있다.
주인공인 스위니 토드(Sweeney Todd)는 긴 캐릭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1846년 처음 발표돼 이듬해까지 연재된 영국 잔혹 소설 《스트링 오브 펄스(The String of Pearls)》에 악역 이발사로 등장했다. 당시 소설 속 스위니 토드는 복수를 위한 살인이 아니라 단순히 금품을 갈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대중은 이발소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면도날로 엽기 살인을 벌이는 그에게 큰 흥미를 느꼈다. 이후 다른 작가들이 윤색을 더했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사회에 빼앗겨 '복수의 목적이 차고 넘치는' 캐릭터로 발전했다.
억울한 옥살이 후에 벌이는 무차별 복수극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음울한 분위기, 싸구려 대중 잡지의 연재 소설과 같은 등장인물들의 설정, 그 안에 멜로와 피를 소재로 한 이 엽기적인 내용의 통속 드라마는 마치 우리나라의 《장화홍련전》과 비슷하다. 살인과 복수라는 자극적인 소재이면서도 사회성 짙은 주제를 품고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설화 같은 이야기가 된 것이다.
스위니 토드의 본명은 벤저민 바커(Benjamin Barker)로 아름다운 아내 루시, 갓난아기 딸 조안나와 함께 살고 있던 평범하지만 행복한 이발사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런던의 권력자 터핀 판사에 의해 누명을 쓰고 추방당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수감 15년 만에 지옥 같은 감옥을 탈출한 후 런던에 돌아온 그는 이름도 바꾸고 다시 이발소를 열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망친 터핀 판사에게 복수하고 아내와 딸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아내는 음독했고 딸은 판사 집에 입양됐으나 그의 노리개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위니 토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던 사회를 원망하며 분노의 화살을 불특정 다수에게로 돌리며 무차별 살인을 감행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미리 알아본 파이 가게 여주인 러벳 부인과 비밀스러운 동업을 이어가며 그 시체들을 인육 파이 재료로 둔갑시켜 완전범죄를 꿈꾼다.
하지만 이렇게 선을 넘어 무차별 복수를 감행한 주인공에게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해자가 더 큰 가해자가 되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결국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기에 그 역시 시대의 희생자가 된다.
이 작품에는 프랑스 연극인 앙토넹 아르토(1896~1948)의 이른바 '잔혹연극론'의 영향도 있다. 무대에서의 '잔혹'이란 피와 절단된 신체 소품 등 관객을 놀라게 하는 '잔인'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현실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행위들을 무대에서 보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량 살육과 식인(食人)이 등장하고 주인공까지도 시대의 제물로 바쳐진다는 제의적인 설정이지만 관객들은 이 모든 복수의 과정을 유쾌하게 즐기게 되고, 오히려 공연이 끝나면 섬뜩한 소재에 열광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복수극이 왜 인기가 높은 콘텐츠인지에 대한 실마리도 있다. 결국 인간 안에 저마다 내재돼 있는 폭력성을 이런 기회에 끄집어냄으로써 관극 중에는 재미를 주고, 현실로 들어와서는 한편으로 스스로 당혹감을 느끼게 해 관객이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더 글로리》에서 복수 대상을 하나씩 만나 서서히 무릎을 꿇게 하는 문동은의 대사와 행동에 박수를 쳐본 적이 있다면 《스위니 토드》에서도 인상 깊게 즐길 장면이 많다. 가령 2막에서 스위니가 부르는 노래 《조안나》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지만 무대에서는 마디마디 순간마다 면도날에 목이 그어져 순식간에 숨이 끊어진 생명들이 하나씩 의자 아래 발판으로 꺼지며 지옥 같은 시체 창고로 떨어져 내린다. 객석에서는 오싹함을 느끼면서 살인과 아름다운 선율이 공존하는 특별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공연은 3월5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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