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닥치고 이제 나랑 춤 춰요”…뮤지컬 물랑루즈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4]

양형모 기자 2023. 2. 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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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3월 5일까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무대 “빈 무대는 촬영 가능하십니다”
-‘인생캐’ 김지우, 이충주와의 사랑 이야기…‘레드’ 그리고 ‘하트’
뮤지컬 물랑루즈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건 ‘22세기에 만든 100년 전 레트로’ 같구나. 롯데월드를 처음 가본 아이처럼 그저 “우아! 우아!”하며 보았습니다.

공연장 입장할 때 티켓을 떼며 직원 분이 “빈 무대 촬영만 가능하십니다”라고 하더군요. 조금 신기했습니다. 보통은 “커튼콜 때만 촬영 가능하십니다”라든가 “공연장 안에서의 사진 촬영은 제한하고 있습니다(절대 찍지 말라는 얘기)”가 보통이니까요.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찬란한 무대라니요! 눈부신 레드로 흥건하게 젖은 무대. 객석 왼쪽 사이드에는 움직이는 풍차, 오른쪽에는 코끼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조형물은 극중에서도 등장하지요(코끼리는 사틴의 분장실입니다. 이곳에서 크리스티안과 처음 만나죠).

뮤지컬 담당 15년 중 이렇게 아름다운 무대는 정말 손을 꼽아야 할 겁니다.

물랑루즈의 무대는 3시간짜리 거대한 설치미술처럼 보였고, 팝 명곡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음악은 짜집기를 예술의 극치로 끌어올려놓은 듯했습니다.

순수하게 ‘쇼’라는 의미로 한정해 본다면, 정말 오랜만에 ‘뮤지컬다운 뮤지컬을 보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이래 물랑루즈처럼 눈부시고, 가슴 벅차게 만들어 준 인트로도 처음이었을 겁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경계에서 조심스럽게 줄을 타는 가사에도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크리스티안과 사틴이 1막에서 부르는 ‘셧업 앤 레이즈 유어 글래스(Shut up and raise your glass)’는 매우 경쾌하면서도 달콤한 넘버. 크리스티안의 ‘데스티니’와 사틴의 ‘댄스 위드 미’가 상황과 맞물려 묘한 라임을 이룹니다.

스토리와 음악을 제외한다면 무대를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는 ‘레드’와 ‘하트’일 겁니다. 무수히 변주되지만 이 두 상징은 관객을 세뇌시키는 것이 진짜 목적일 정도로 집요하게 등장합니다.

그러고 보면 레드와 하트는 많은 것을 대변합니다. 레드와 하트는 사틴과 크리스티안 각각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 사람 모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열정적이고 요염한 레드(사틴), 순정과 사랑의 하트(크리스티안).

여기에 화려함 안에 감추어진 순수함과 동료애의 하트(사틴)와 사랑을 향해 직진밖에 모르는 무모할 정도의 열정, 레드(크리스티안).

레드와 하트는 또한 화려한 인간의 욕망과 판타지 이면에서 스러져가는 폐가와 같은 물랑루즈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물랑루즈 최고의 스타. 관객들을 매일 밤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정작 재정위기에 처한 물랑루즈를 지키기 위해 몬로스 공작에게 팔려가다시피 해야 하는 운명의 여인, 사틴이 이 뮤지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사틴은 아이비, 김지우 두 배우가 맡고 있는데 제가 공연장을 찾은 날의 사틴은 김지우 배우였습니다. 김지우 배우의 인생캐를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보람이 있었던 관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자칫 뻔해 보일 수 있는 사틴이라는 캐릭터를 풍부한 상상력을 뿌리고 논리적인 해석으로 가지를 쳐 활짝 꽃 피웠습니다.

덕분에 오글거릴 수도 있었던 크리스티안과의 연애담이 동화와 현실 사이를 오가며 관객들로 하여금 망설임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봅니다.

김지우 배우가 부르는 넘버들을 넉넉히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도 대만족. 1막의 ‘스파클링 다이아몬드(The Sparkling Diamond)’와 ‘파이어워크(Firework)’를 들으며 꽤 행복했습니다. 특히 파이어워크에서는 소름이 쭉 올라와서 벗어놓은 다운재킷을 만지작거리게 되더군요. 크리스티안과 사틴이 부르는 듀엣송 ‘유어 송(Your Song)’은(엘튼 존의 명곡이죠) 이 뮤지컬의 주제곡과도 같은 곡. 2막에서도 리프라이즈됩니다.

이날의 크리스티안은 이충주 배우. 특유의 송곳 같은 소리가 시원시원합니다. 이충주 배우는 원래 클래식 음악 전공자로 알려져 있죠. 예고시절에는 바이올린,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무대에서 종종 천장을 뚫는 샤우팅을 선보여 이 배우를 록커 출신으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성악 그것도 테너가 아닌 바리톤이었습니다. 신기하죠?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뮤지컬 데뷔했는데 성악 발성과 바리톤의 두꺼운 음색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예전 인터뷰 때 이충주 배우는 당시를 떠올리며 “음악감독님들께 뮤지컬은 그렇게 소리 내면 안 된다고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열심히 고치고, 떼어내고 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습니다. 이후 록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발성이 원래 갖고 있던 발성과 섞이면서 지금의 창법이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였죠.

얘기가 샜는데, 이충주 크리스티안은 과연 사틴이 한눈에 빠져들 만한 매력남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처럼 무대에서 볼 수 있었던 이정열 배우. 이정열 배우를 볼 때마다 ‘미스 사이공’의 엔지니어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곤 했는데, 지들러에게서 그 향기가 나더군요. 반가웠습니다.

멋진 앙코르 ‘모어 모어 모어(More More More!)’가 끝나면 허공에서 객석으로 무수히 많은 붉은색 종이꽃가루가 떨어집니다. 가슴이 터질 듯 아름다운 순간이죠.

이 연출이야말로 물랑루즈라는 뮤지컬이 갖고 있는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가장 극적으로 관객에게 전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황홀한 ‘행복의 순간’을 손에 쥐고 돌아간 관객들은, 적어도 한동안 힘차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극 중 대사로도 나왔던 저 유명한 대사.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 쇼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일 겁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사진제공 | CJ ENM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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