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찾아가 그냥 들으라, 임윤찬의 음악을

심영구 기자 2023. 2. 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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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임윤찬 위그모어홀 데뷔 공연 관람기 (글 : 황정원 작가)
ⓒableB


뉴욕타임스는 2022년 최고의 클래식 공연 중 하나로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연주를 꼽았다. 우열을 가리기 위한 연주가 최고의 공연으로 선정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평론가 재커리 워프가 임윤찬의 공연을 영상만으로 경험하고 그 같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그의 연주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화면으로나마 임윤찬의 연주를 접한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 두 귀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이 돌풍이, 식지 않은 콩쿠르의 열기가 일으킨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또 다른 우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줄 바람인가.  

지난 1월 18일,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열린 그의 영국 데뷔 무대를 찾은 주요 일간지의 비평가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듯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 한편에 품고 온 의구심과 호기심을 기술하며 평론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 또한, 모두 동일했다. 임윤찬은 진짜다. 더 타임스의 리처드 모리슨은 아예 “이 18살의 한국 피아노 스타는 진짜배기 (the real deal)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브닝 스탠더드의 배리 밀링톤은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진짜배기 (the real deal)라고 확신했다.”라고 썼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겠다며 방어적인 태도로 공연장을 찾았던 나 역시 죽비로 어깻죽지를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고, 2주가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여운에 잠겨 있다.
 

절제된 바흐의 노래

ⓒableB

그날 위그모어 홀에는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옅은 흥분이 관객들 사이를 일렁거렸다. 공연은 영국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존 다울랜드의 대표작인 ‘눈물의 파반느’로 부드럽게 시작됐고, 이어진 바흐 신포니아에 서서히 객석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신포니아는 바흐가 자신의 아들에게 건반악기 다루는 법과 작곡을 가르치기 위해 쓴 연습곡이다.

게다가 이처럼 대위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다성음악은 감상이 까다롭기도 하다. 그러므로 신포니아 전곡을, 그것도 데뷔 무대에서 듣기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 역시 공연 전, 예습 삼아 음반을 들으며 선율끼리 얽혔다 풀어지는 궤적을 쫓다 멍해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임윤찬의 바흐를 기다렸다.   

이 곡이 원래 이렇게 명쾌했던가? 나는 여전히 나이고, 내 귀가 그새 더 훈련됐을 리도 없는데 그의 선율은 마치 누가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 같았다. 한 선율이 전면으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다른 선율의 배경이 되어주면, 남은 또 하나의 선율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재촉한다. 그의 두 손이 만들어내는 세 선율들은 그렇게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조적인 조화를 이루며 나아갔다. 그들의 어울림과 어긋남을 실타래 삼아 따라가니 음악의 전체적인 윤곽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보다 나를 매혹시킨 것은 시간을 손에 쥐고 노는 듯한 그의 유연한 박자감이었다. 음표와 음표 사이, 침묵과 소리 사이의 절묘한 타이밍은 각 선율의 독립적인 목소리를 더욱 부각시켰을 뿐 아니라 듣는 사람이 애달아 한층 귀를 세우게 만들었다. 예상되는 순간 들려오지 않아 어리둥절 다음 음을 찾으려는 찰나, 슬쩍 옆에 음을 놓고 달아나는 능청스러움에 웃음이 비죽 배어 나왔다. 

이날 신포니아 15곡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구상대로 순서가 재배치된 까닭에 F단조 심포니아가 마지막 곡이었다. 유난히 느린 템포로 시작, 섬세한 터치로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한 피아노를 숨죽이고 들었다. 마지막 화성의 울림이 사그라지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불과 4분 남짓 한 시간에 강렬한 오라토리오 (종교적 극음악) 한 편을 꽉 찬 3중창으로 들은 듯했기 때문이다. 바흐가 악보 서문에 칸타빌레, 즉 노래하는 듯한 연주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기해 놓았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언어로 명기된 바흐의 생각을 그의 음악으로 먼저 경험하다니.
 

위그모어홀을 뒤흔든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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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베토벤으로 채워진 공연 후반부 프로그램이 못내 아쉬웠다.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음악 세계를 뒤집어 놓은 연주는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었기에, 같은 낭만주의 시대 곡을 직접 들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듯 인터미션 중 프로그램에 대한 불평이 적잖이 들려왔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임윤찬은 관객이 숨을 돌리는 동안 몰래 피아노를 교체했든가 아예 손을 바꿔 끼고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1부와는 전혀 다른 음색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7개의 바가텔은 근심 걱정 없는 듯 쾌활한 멜로디로 시작됐지만 음색은 단단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계속 등장하는 엇박자와 스포르짠도는 힘찬 타건으로 거침없이 표현됐다.

그가 응축된 에너지를 터트린 것은 에로이카 변주곡에서였다. 1부의 절제된 연주를 보상이라도 하듯 그는 한 변주곡에서 다음 변주곡으로 질주해 나갔다. 그와 함께 주제 선율이 발전하고 전개되어 가는 모습을 정신없이 쫓다가, 각 변주를 뚜렷하게 구분 짓는 경이로운 테크닉에 눈을 돌리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연주의 끝에 폭풍 같은 함성이 터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어진 앙코르, 바흐의 ‘예수, 인류 소망의 기쁨’과 리스트의 ‘사랑의 꿈’. 두 곡 모두 지나치다 싶을 만큼 흔히 들을 수 있는 곡이었지만, 이날 객석은 마법에라도 걸린 듯 얼어붙었다. 출입구로 향하던 관객은 벽에 기대어 선 채로, 또 많은 관객이 객석 끝에 걸터앉아 무대로 몸을 기울인 채 음악에 귀 기울였다. 투박하기까지 한 ‘예수, 인류 소망의 기쁨’은 교회 한편에서 잠기는 긴 묵상 같았고,  ‘사랑의 꿈’은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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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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