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 비슷한 피칸‧호두, 항산화 성분은 호두가 압승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입력 2023. 2.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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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맛 이야기’] 정월대보름 아침 어떤 부럼 깨볼까? 놀라운 한 알, 견과류
피칸은 납작하고 잘 볶은 커피콩처럼 진한 색에 주름도 적다. 맛이 쓰지 않고 부드러우며 씹을수록 녹진한 고소함이 느껴진다. [게티이미지]
어금니 하나가 거무스름하게 썩어 들어가는 걸 '저러다 말겠지'하며 몇 달 동안 지켜만 봤다. 대책 없는 기대는 결국 신경치료라는 공포의 결과를 불러왔다. 잇몸 여기저기에 마취주사를 맞고 어금니가 반쯤 갈려나간 뒤에야 후회가 밀려왔다. 하소연 할 데가 없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썩은 이와 공포와 통증에 대해 주절거렸다. 안쓰러움 섞인 나무람 끝에 엄마는 "뭐 먹을 수는 있어? 곧 보름인데 부럼도 못 깨겠네"라고 말했다.

도대체 마지막으로 부럼을 깬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 아침이면 눈 뜨자마자 마른 깍지를 손으로 바사삭 부숴 땅콩을 꺼내 먹고, 호두도 한두 쪽 먹으며 "부럼 깨물자! 냠냠"을 외쳤다.

정월대보름 아침에 깨 먹을 부럼은 딱딱한 껍질 속에 든 열매나 씨앗 즉, 견과류로 준비한다. 옛날에는 영양 섭취가 부족해 부스럼이나 버짐 같은 게 쉽게 생겼다. 연초에 영양과 열량으로 꽉 찬 귀한 견과류를 먹으며 한 해 동안의 건강을 빌고, 단단한 것을 씹으며 치아가 튼튼해지길 소원했다. 지금도 정월대보름 즈음 되면 땅콩과 호두 등을 묶어 파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귀밝이술은 건너뛰어도 부럼을 깨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가보다.

고단백‧저지방 피스타치오, 고지방‧고열량 캐슈너트

‘견과(堅果)'는 말 그대로 딱딱한 껍데기나 깍지에 싸여 있는 나무 열매를 말한다. 일부 견과류 중에는 씨앗인 게 많지만, 그렇다고 나무 열매의 모든 단단한 씨앗이 견과류인 것은 아니다. 영어로는 '너트(nut)'라는 말이 붙는다. 견과류는 우리 몸에 이로운 지방과 식이섬유, 식물 단백질, 항산화제 역할을 하는 다양한 영양소를 갖고 있다. 열량이 높고 알레르기를 유발해 어떤 이들에게는 피해야할 식품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다양한 종류를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각각 모양도 다채롭고 저마다 풍미와 식감이 달라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피스타치오는 아이스크림 속 풍미 좋은 토핑으로 생애 처음 만났다. 조개처럼 입을 살짝 벌린 단단한 껍데기에 속에 있어 톡톡 까먹는 재미만큼 우리 몸에도 좋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다른 견과류에 비해 지방 함량은 낮아 칼로리가 적다. 피스타치오를 살펴보면 녹색과 붉은 보라색이 감도는데 항산화 성분이 함유돼 나타나는 색이다. 단단하지만 질감은 부드러운 편이며 맛이 산뜻해 깔끔하면서 고소하다.

캐슈너트는 사실 열매 속에 든 단단한 씨앗 그 자체로 굳이 따지자면 견과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편의상 그렇게 분류한다. 지방이 풍성하며 버터처럼 진하고 고소한 풍미, 매끈하면서 단단하지 않은 질감을 갖고 있다. 씹기 쉽고 맛이 좋아 자꾸만 손이 가지만 열량이 매우 높은 편이니 주의해야 한다.

브라질너트는 아마존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인데 견과류 중 항암에 도움이 되는 셀레늄이 가장 많다고 여겨진다. 하루 2000칼로리가 필요한 성인이 브라질너트 한두 개를 먹으면 하루치 셀레늄을 훨씬 웃돌게 섭취하는 셈이다. 마그네슘, 구리, 아연 같은 미량 영양소를 갖고 있으며 단백질 함량이 높고 우리 몸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까지 갖고 있다. 질감이 아주 부드러우며 기름지고 고소한 맛 가운데 옅은 쌉싸래함을 지녔다. 남아메리카에서부터 날아 온 이 귀한 견과류는 모든 게 너무 풍부해 하루에 3~5개 정도만 먹는 게 좋다.

마카다미아너트는 몸값이 매우 비싼 견과류 중 하나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보다 한층 부드럽고, 불포화지방과 식물단백질 함량이 높으며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물론 미량의 항산화제와 폴리페놀도 갖췄다. 매끈하고 기름진 특유의 질감 덕에 비건 치즈를 만들 때 유용한 재료이다.

효능 좋고 저렴한 아몬드, 부럼으로 안성맞춤

헤이즐넛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누텔라'라는 초코 크림을 떠오를 수 있다. 개암나무 열매인 헤이즐넛은 견과류 중에 고소한 풍미가 좋기로 손꼽히기에 초콜릿과 짝을 이뤄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남다르게 좋은 풍미 덕에 초콜릿 없이 그냥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올레인이라는 불포화지방산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호두는 피칸보다 더 봉긋하고 아주 연한 갈색에 고불고불한 홈이 많이 패 있다. 쌉싸래한 맛이 도드라진다. [게티이미지]
피칸과 호두를 여전히 헷갈려하는 이들이 많다. 둘은 나무 자체가 다르고 생김새와 풍미, 껍데기, 채취 방법 등이 모두 다르다. 무엇보다 호두는 더 봉긋하고 아주 연한 갈색에 고불고불한 홈이 많이 패 있으며 쌉싸래한 맛이 도드라진다. 피칸은 납작하고 잘 볶은 커피콩처럼 진한 색에 주름도 적고 맛이 쓰지 않고 부드러우며 녹진한 고소함을 가졌다. 영양만 보면 둘이 성분은 비슷하지만 호두가 다른 견과류보다 항산화 성분이 월등히 많다. 아몬드는 이미 익숙한 견과이며 좋은 효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이미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 아주 경쾌하게 부서지며 씹을 수 있기에 부럼으로 쓰기에 딱 좋다.

우리가 견과로 여겨 흔히 먹는 땅콩은 사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콩과 같은 협과이다. 영어 이름이 'peanut'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영양의 구성과 단단한 깍지에 싸여 있는 점은 견과와 비슷하다. 반면 밤은 견과에 포함되지만 탄수화물이 풍부한 채소와 더 가까워 보인다. 영양 구성뿐 아니라 조리했을 때의 맛과 식감 또한 그렇다. 밤을 포함해 잣, 은행 역시 견과의 일종이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껍데기는 아니지만 정월대보름 아침에 이들을 준비해도 좋다. 잣은 수확하기가 아주 까다로워 몸이 귀한 견과이니 한 알도 놓치지 말 것이며, 노란 은행 알은 소금을 살살 뿌려 구워 놓으면 꿀맛이지만 10개 이상은 먹지 않는 게 좋다. 또 한 가지, 코코넛(coconut)도 견과이다. 아이들에게는 납작한 코코넛 칩이나 잘 마른 코코넛가루를 아침 요거트나 빵에 올려주며 우리 세시풍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도 좋겠다.

함께 부럼을 아작아작 깬 다음엔 여지없이 찾아올 2023년의 뜨거운 더위를 서로 간에 팔아치우는 재미도 잊지 말자.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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