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EYE] 난방비로 본 '시한부 정권'과 '덤터기 정책'의 악순환

고철종(논설위원) 2023. 2. 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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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끊게 중임제 개헌 여론 52.3%, 의원내각제 13.5%보다 압도적


에너지, 건강보험, 실업급여, 국민연금, 탄소제로 등 국민 생활에서 현재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주요한 정책 요소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인내하는 현재'가 '편안한 미래'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그와 반대로 현재의 편안함을 즐기면 미래가 가혹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정치에 연결시키면 은밀하고 교활한 유혹이 발생한다. 국민들에게 인내를 요구하기보다는 당장의 윤택함을 제공하는 게 표심 공략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혹에 굴하면 그것이 포퓰리즘 정책이 되고 종국에는 미래를 갉아먹는다.

더욱이 우리처럼 5년 시한부 정권이 반복되는 정치 풍토에서는 그런 유혹이 정치 권력에 더 크게 다가온다. 정권을 잠깐 잡는 동안 국민들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것 대신 편익을 제공하면 인기가 올라갈 거고, 반대급부로 생기는 미래의 문제점은 미래 정권에 떠넘겨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난방비 공방 역시 그런 맥락 안에 있다. 야당은 현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적반하장'이라며 반격한다. 문재인 정부 때 가스공사가 국제 가격 급등을 이유로 8차례나 국내 가격 인상을 요청했지만, 여론을 의식해 뭉개다가 지난해 4월 대선 패배로 정권 교체가 확정된 이후에야 비로소 요금 인상을 승인해, 모든 책임을 현 정부에 떠넘겼다는 입장이다.

어느 쪽 논리가 맞느냐를 떠나 시장은 시장원리대로 움직여야 뒤탈이 적다. 모든 재화는 원가가 오르면 판매 가격이 오른다. 에너지 소매가격도 그렇게 연계해서 올려야 공급처인 에너지 공기업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된다.

문제는 과거 많은 정권들이 당장의 여론을 의식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 결과, 최근만 본다면 가스 요금은 1년 새 50% 이상 올랐고, 전기 요금은 올 1분기에 42년 만에 최고 인상 폭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거기다 한전의 지난해 적자가 무려 30조 원에 이르는 등 에너지 공기업의 지속가능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때깔 좋은 명분은 먹고 부담은 떠넘기고

이렇게 보면 우리 정치는 골치 아프고 민감한 사안은 미래로 떠넘기고 보자는 심리가 은연 중에 고착된 게 확실하다. 과거 거의 모든 정권에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실업급여 등에 관해 조만간 재원이 고갈되거나 미래 세대의 부담을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그리곤 어김없이 전문위원회가 구성됐지만, 거기서 나온 개혁 방안대로 당장의 부담을 현재의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면서 짊어져달라고 요청하는 용기는 내지 못했다.

저탄소 녹색성장도 그렇다. 녹색에너지 신재생에너지가 친환경적이란 것을 모르는 국민이 없다. 문제는 유기농 음식이나 친환경 옷이 비싸듯 녹색에너지도 비싼 에너지다. 우리 풍토에는 맞지도 않는 녹색에너지를 확대하려면 국민에게 그만큼 비싼 전기 요금을 매겨야 한다.

그런데도 종전 가격으로 가능한 것처럼 포장한 것은, 좋은 명분은 내가 먹고 그에 따른 부담은 다음 정권으로 미루겠다는 의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불순한 의도가 반복되다 보니 이념적으로 같은 정권이 잡더라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모두 뒤엎어버리는 풍토까지 생겨났다.

떠넘기기 덤터기 정책의 난무를 막기 위해 시한부 정권의 반복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해 말 SBS D포럼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금의 대통령제를 바꾸자는 의견(47.8%)이 그대로 두자는 의견(42.8%)보다 많았다.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2022년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의 응답을 얻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이다.

바꾸는 방향은 '4년 단위 대통령 중임제'(52.3%)에 대한 선호 비율이 '대통령·총리 혼합형 정부 형태'(23.5%)나 '의원내각제'(13.5%)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4년 임기로 2번 연임할 수 있게 하되 중간선거로 국민이 심판한다면, 관행처럼 되풀이돼온 떠넘기기 덤터기 정치가 어느 정도는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든다. 보수든 진보든 각각의 정치 진영이 미래에 다가올 정책 평가를 두려워하고, 그와 동시에 국민은 자신의 미래와 후손을 위해 현재의 부담을 어느 정도 감수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절실한 때다. 

고철종 논설실장

고철종(논설위원)sbskc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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