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을까 [독서일기]

장정일 2023. 2. 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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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운이란 무엇인가〉
스티븐 D. 헤일스 지음, 이영아 옮김
소소의책 펴냄
ⓒ이지영 그림

신년에 한 해 운세를 보는 사람이 많다. 동양에서만 운(運)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스티븐 D. 헤일스의 〈운이란 무엇인가〉(소소의책, 2023)에 따르면 운은 서양에서도 중시되어왔다. 그리스에서는 운을 티케(Tyche)라는 신으로 의인화하여 숭배했고, 그것이 로마로 건너가서 포르투나(Fortuna)가 되었다. 티케도 포르투나도 남신이 아닌 여신이다.

고대인의 유비(類比)적 사고방식은 운명의 예측 불가능성을 여성의 변덕스러움과 연결시켰고, 여성처럼 사랑해주면 운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운을 철저히 부정했다. 이들은 변덕스러운 운에 당하지 않기 위해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모든 행복을 포기했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어떤 우연도 인간을 불운에 빠트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사람들은 사랑과 가족까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 이들을 ‘돌덩어리 인간들’이라고 조롱했다.

‘성공=실력+운’이라는 공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같은 재능을 가진 장군이 두 사람 있으면 언제나 운이 좋은 쪽을 발탁했다. 문제는 운이 객관적 실체처럼 확인되지 않는 것이다. 운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확률이론·양상이론·통제이론 등이 개발되고 적용되었다. 이런 이론들은 스포츠나 도박처럼 경직되고 제약이 심한 시나리오에서만 부분적인 쓸모가 있었지, 개인과 특정 사건에서 운(혹은 불운)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예컨대 통계는 뛰어난 농구선수가 성공시킨 자유투에서 실력의 몫과 운의 몫을 정확히 나눌 수 있지만, 인생에서는 농구의 자유투처럼 체계적으로 반복되는 도전이 극히 드물다.

성공한 사람들은 운 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한다. 그들의 성취에 조금이라도 운이 따랐다는 데 동의하면 개인의 노고를 깎아내리고 약점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변덕스러운 운의 덕이라면 그 운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널리 퍼져 있는 성공의 공식에서 운은 ‘환경+유전자’를 뜻한다. 누군가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태어나서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았는데 자기 명의의 신탁기금을 갖거나 거액의 유산 상속자가 된다.

지은이도 말했듯 환경적 운과 유전적 운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런 태생적인 운은 개개인의 도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장발장처럼 빵을 훔칠 리는 없겠지만, 빌 게이츠와 같은 통 큰 자선가가 되기란 만무하다. “어쩌면 운이 좀 더 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뭔가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성공에 운이 개입하는 정도를 줄여서 운이 아니라 개인의 창의력과 결단력,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도록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만들 수 있을까?”

사랑은 대칭이 아니라 비대칭

〈사랑의 오류에 대한 철학적 안내서〉(일므디, 2023)는 호세 A. 디에즈와 안드레아 이아코나가 함께 쓴 책이다. 각기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두 철학 교수는 그동안 철학자들이 논의한 사랑은 에로스와 필리아를 뭉뚱그린 것이라며, 자신들은 오로지 에로스만 다루겠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 사람에게 열정적으로 빠져들어 중단하기 불가능한 낭만적 사랑을 대상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다양한 인지적 실수를 유형별로 살펴본다.

“사랑은 비대칭적이다. 양쪽 모두 열렬히 사랑하는 행복한 경우도 있지만 아예 사랑받지 못하거나 동일한 강도로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랑하는 경우도 흔히 나타난다. 사람은 자신과 동일한 경향을 띠지 않거나 동일한 경향을 띠더라도 강도가 훨씬 낮은 상대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사랑은 대칭이 아니라 비대칭이라는 지은이들의 주장은 사랑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주장을 스토커에 대한 면죄로 오해하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비대칭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일방적 강요와 위력인 스토킹과는 다르다.

낭만적 사랑은 합리화에 기대고 있는데, 심리학에서 ‘합리화’는 부정적으로 쓰인다. 주체가 진짜 이유를 인식하지 못하는(혹은 인식하고 싶지 않은) 행동이나 감정을 일관되게 설명하려는 정신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합리화는 ‘이유 만들어내기’를 하는데, 주변의 충고가 무력한 것은 합리화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충고보다 더 창조적인 이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데이트를 해온 알렉스가 좀 더 진지한 관계가 되기를 머뭇거릴 때 키코는 이렇게 추론한다. “이 사람은 아직 미성숙해.” 알렉스가 미성숙해서 진지한 관계를 숙고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알렉스가 키코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가설은 고려되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의 현실 인식을 쉽게 왜곡한다. 연인들은 사랑이라는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 이건 일반적 안경과 전혀 다르다. 일반적 안경이 시력을 보정해 시력을 개선한다면 사랑이라는 안경은 시야를 어둡게 하기 일쑤이다. 사물의 모습을 바꾸고, 눈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며, 없는 것을 보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지만, 낭만적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경고다.

결혼 경험이 없는 미국의 독신자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95%)가 결혼한다면 배우자가 영혼의 동반자이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지구상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인간이 있고, 우리가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외모, 관심사, 교육수준, 유머 감각, 정치관과 종교관, 버릇, 태도, 패션 감각, 음악 취향, 도덕관 등등 자신의 이상형에 꼭 들어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객관적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운의 전문가인 스티븐 D. 헤일스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라면서, 영혼의 동반자를 만났다는 주장은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사후 확신 편향은 현재 상태를 중요한 분석 기준으로 삼는 특성상 “배우자가 누구든, 그 사람과의 결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불변의 서사, 오직 신의 섭리로만 설명할 수 있는 필연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너무 냉소적인가. “사랑은 틀린 인식, 틀린 개념, 틀린 이해의 무한한 원천”이라는 호세 A. 디에즈와 안드레아 이아코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뻔히 저지르는 인지적 실수는 부모의 자녀 사랑, 우정, 이데올로기, 정치, 종교 등을 이유로 맺어진 모든 인간관계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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