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암 환자도 수술 받고 항암제 먹으면 더 살아요”...의료계 치료 독려 공감대
65세 이상 간암 진단 2017년 45.9%로 늘어
“고령 환자 치료비 대비 효과 연구 및 합의 있어야”
얼마 전 박중원 국립암센터 간담도췌장센터 교수에게 93세 여성이 찾아왔다. 서울대 의대에서 소화기내과를 전공한 박 교수는 간암 관련 국내외 임상 연구를 선도한 간암의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박 교수를 찾은 이 환자는 미국에 거주 중이었다. 우연히 한국을 방문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간경변성 2형 간암 진단을 받았다. 이 환자는 현재 국내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박 교수는 이달 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간암의 날(매년 2월 2일)’ 행사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며 “환자가 조금만 더 일찍 검진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고령 암 환자들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오는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 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의료계는 노인 환자에 대한 암 치료가 화두가 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선 암 종류와 상관없이 고령의 암 환자는 수술이나 항암 치료는 물론 최소한의 치료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간암학회에 따르면 간암 진단을 받고, 다른 부위로 전이된 ‘진행성 간암’을 진단받은 65세 고령환자 10명 중 4명(40.2%)은 치료를 포기했다. 간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조기 간암 환자의 경우에도 65세 이상 환자 10명 중 3명(68.3%)은 수술 대신 국소 치료를 받았다.
고령의 암 환자들이 이런 결정을 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환부를 도려내는 절제 수술은 고통이 심하고, 몸이 많이 노화해 수술 후에도 후유증이 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암 수술을 해봤자 더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는 섣부른 판단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인구의 고령화로 노인 암환자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간암 환자는 전 연령에서 감소하는 추세인데 65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계속 늘고 있다. 간암학회가 간암등록사업위원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간암으로 진단 받은 1만 5186명 환자 중 65세 이상 환자는 38.4%로 집계됐다. 고령환자 비중은 지난 2008년 35.5%에서 2017년 45.9%까지 늘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린다. 영양분을 저장·방출하고 해독하는 역할을 하지만 웬만큼 악화가 되기 전까지는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한아 이대목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기대수명이 길어졌고, 또 어떤 치료법을 쓰는 지와 무관하게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만 하면, 연령과 무관하게 생존율은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고령 암환자의 1년 생존률은 55.5%, 5년 생존률은 12.8%로 65세 이하 환자의 생존률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고령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의학 기술의 발달 등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난 만큼, 고령의 환자들이 나이를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도록 않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한아 교수는 “나이가 많아서 수술이 힘들다면, 면역항암제 적용을 고려할 수도 있다”며 “고령 간암 환자에게 면역항암제를 1차 치료제로 썼을 때 부작용이 적었다”라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고령 암환자에 대한 적극적 치료에 대해서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박중원 교수(내과학회 이사장)는 “의학적으로는 무조건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95세 간암 환자를 치료해서 100세까지 생존할 수 있는 지 생각을 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연령별, 치료 방법에 따른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평가에 대한 연구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모든 치료에는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조세 성격인 건강보험 재정이 급격하게 고갈되는 상황에서 고가의 치료를 모든 연령에서 받아야 하는지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저출산 고령화의 여파로 노인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부터는 노인으로 분류해 복지 혜택을 지원한다. 하지만 고령화로 재정부담이 커지자, 이런 복지 혜택의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간암학회 김도영 기획이사(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80세에 가까운 고령인데도, 신체 활동은 훨씬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최근 발전한 치료법을 적용하면 고령의 환자에게도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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