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헨델 프로젝트’ 발매… "태어나서 가장 많이 연습"

이강은 2023. 2. 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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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연주를 많이 하고 집에 와 쉬면서 새로운 곡 익히는 생활이 익숙하고 좋아요.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역할은 없고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 ‘헨델 프로젝트(The Handel Project)’를 발매한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은 본인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멋있고 위대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새 앨범 발매를 기념해 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내놓은 이번 앨범은 2021년 DG에서 발매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 스케르초’에 이어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고전주의 시대 음악을 주로 다뤘던 전작들과 달리 바흐(1685∼1750)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헨델(1685∼1759)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1720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출판된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2권 중 조성진이 가장 아끼는 3곡과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곡 등이 수록됐다.

다음은 독일에서 머물고 있는 조성진과의 일문일답.

─근황은.

“어제 잘츠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1월에는 계속 미국에 있었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워싱턴 내셔널심포니랑 협연했고, 리사이틀을 시애틀과 LA에서 한 뒤 돌아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공연하는 등 펜데믹 전처럼 바쁘게 지내고 있다. 예전처럼 바쁜 게 좋은것 같다. 살아있는 것 같고 동기부여도 많이 되고.” 

─코로나19 발생 3년 동안 다른 음악가들과 비교해 연주 활동이 많이 위축된 것 같진 않은데.

“2020년 상반기에는 거의 온라인 콘서트만 하고 집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되게 불안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고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거라서.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았던 것 같다. 음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그때 사실 ‘헨델 음반을 한번 녹음해볼까’ 생각이 들어, 악보를 많이 사가지고 집에서 막 (피아노를) 쳐봤다.”
─바로크 음악 녹음은 처음인데, 바흐가 아니고 헨델을 고른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바흐를 아직 녹음하거나 연주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다. 둘 다 너무 존경하는 작곡가인데 뭐랄까 바흐(음악)는 조금 더 인텔렉추얼하고 복잡하다면 헨델 건반 악기 모음곡은 좀 더 가슴에서 나오고 멜로딕한 면이 있다. 바로크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았던 내가 처음 시작하기에는 바흐 음악보다 헨델 음악이 접하기가 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헨델 음악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크 음악은 이해하거나 손에 붙거나 자신감이 붙는 데 다른 장르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음반 준비할 때 태어나서 가장 많이 연습했다. 특히 지난해 2월 잡혔던 연주 투어 일정이 취소되면서 한 달 동안 집에 있을 때 매일 7∼8시간씩 연습했다.”

─음반에 담은 곡들은 어떻게 골랐나.

“선곡 의미는 (따로) 없다. 건반 모음곡 1,2권 다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쳐본 뒤 그중 마음이 와닿는 것들을 골랐다. 제일 좋아하는 곡들로. 브람스의 헨델 변주곡은 브람스가 헨델 모음곡에 영감을 받은 곡이라 넣는 게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조성진은 앞서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은 상대적으로 연주도 흔히 되지 않고 대중에게 덜 알려진 곡들이지만 마음이 울려오며 동시에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라며 “정말 고르기 힘들었지만, 음악의 구조와 아이디어에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세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던 헨델 곡을 현대 피아노로 연주했는데.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는 방식이라 현을 햄머로 치는 현대 피아노와 비교해 건반 외엔 다른 악기다. 작년 5월 (독일) 밤베르크에서 연주할 때 악기 창고에 하프시코드가 많아 쳐봤는데 정말 어려웠다. 하프시코드로 헨델 등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면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까다로웠다. 그래서 강약 조절도 쉽고 표현력이 더 용이한 현대 피아노로 치는 게 장점이 많은 듯하다. 헨델과 바흐가 살아 돌아와 이 음악을 들었을 때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바로크 음악은 해석의 폭이 되게 넓다. 베토벤이나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보다 악보 지시가 훨씬 적어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그냥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해석으로 (피아노를) 쳤다.”
─이번 음반처럼, 새로 도전하는 작곡가들의 음반을 녹음할 때 앞선 연주자들의 음악을 참고하는 편인가. 

“곡을 배울 때는 다른 분들의 음반을 잘 듣지 않는다. 너무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많아서 배울 때 (그들의 음반을) 들으면 영향을 받게되기 때문이다. 다만 음반 완성하고 투어다닐 때는 듣곤 한다.”

─베르크 소나타와 이번 음반처럼 의외 선택들도 하는데 레퍼토리 확장을 위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사실 음악하는 사람들한테 베르크 소나타는 굉장히 유명한 곡인데, 일반 대중에게는 안 유명할 수 있다고 봐서 프로그램에 넣는 편이다. 레퍼토리를 넓히기 위한 고민은 없다. 피아노는 레퍼토리가 너무 많고 다 해보면 되기 때문이다. 조금 고민이 있다면 시간이 부족해 연주 투어를 하면서 새 곡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연주(를 많이)하면서 집에 오면 새 곡 익히고 연주하는 게 익숙하고 재밌다.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모음곡이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은 언제쯤.

“섣불리 (목표를) 얘기하지 않기로 했는데. 30대 안에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베토벤 소나타 전곡은 많은 음악가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인데, 이렇게 말할 순 있겠다. 40대가 지나가기 전에 ‘하고 싶다’, ‘하겠다’가 아니라.“(웃음)

─좋아하는 음악을 오래 하는 비결은.

“조금 게으르긴 하지만 바쁜 게 좋더라. 바쁘게 일하면 좀 살아있는 느낌, 뭔가 쓸모 있다는 느낌도 들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성격인 것 같다. 계속 새로운 레퍼토리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이번 음반으로 헨델에 대한 관심도 느는 것 같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음악가로서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역할이 있는지 궁금하다.

“헨델 음악은 충분히 한국의 초중고 음악 전공생들이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연주됐으면 한다. 저도 그랬지만, 콩쿠르 나갈 때 리스트 곡 등 화려한 곡을 연주하는 경향이 있다. 테크닉적으로 그런 곡들이 훨씬 어렵지만 콩쿠르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런데, 헨델의 작품도 공부하게 되면 얻는 게 있을 거라고 본다. 저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역할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걸(음악을) 하는 건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다. 되게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관객분들한테 이런 좋은 음악과 멋있는 음악, 위대한 음악을 보여드리는 거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그 외에 클래식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은 없다.”
─전문 연주자로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잘 모르겠다. 음악인과 음악가로서의 커리어는 분리시켜야 한다. 좋은 음악인이 좋은 커리어를 안 갖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 커리어 측면에서 옛날과 달라진 점은 전에는 베를린필과의 협연 등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젠 상당히 없어졌다. 이미 해봤기도 했고 할 예정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랑 공연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엄청 좋은 오케스트라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맞고 음악적으로나 성격이 잘 맞는 사람들과 연주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게 커리어로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나.

“행복에 대해 매일 생각하는 것 같고, 지인들한테도 언제 행복하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어려운 것 같다. 행복을 쫓으려고 하다 보니 행복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언제 제일 행복한가 돌아봤을 때 투어 마치고 집에 와 쉴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집에서 쉬다가 연습하고, 새 악보 사서 배우고 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 쉴 때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클래식 본고장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요즘 K클래식에 대한 현지 분위기가 어떤가.

“한 1년 전부터 그걸 좀 느꼈다. 제가 외국에서 인터뷰할 때마다 (현지 기자들이) ‘한국 사람들 요즘 (연주) 너무 잘하는데 비결이 뭐냐’고 물어. 그럼 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잘한다. 원래부터 잘했다’고만 얘기.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이게(클래식이) 유럽 시장이고 유럽 음악이기 때문에 동양인이 하면 불리하다기보다 아직도 어색한 느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음악가들보다 뛰어난 한국 음악인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주목받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외국 기자들이 맨날 물어보는 게 ‘왜 이렇게 한국 사람들 콩쿠르를 많이 나가냐’이다. 그러면 저도 콩쿠르 자체는 싫어하지만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그것밖에 기회가 없을 수 있다. 인지도를 쌓고 연주 기회가 생겨 연주를 잘 하면 매니지먼트랑 계약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팬덤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예전에 ‘제 연주를 보러 오는 분들이 한 도시에 1000명, 2000명 정도 있으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저는 추락이 아니라 올라가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올라갈까 고민을 해야 될 것 같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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